기도 - 1
“강서구는 교회 40개가 부흥하고 사찰 35개가 무너지도록, 금정구는 교회 113개가 부흥하고 사찰 94개가 무너지도록(범어사, 안국서원 등), 부산진구는 교회 100개가 부흥하고 사찰 129개가 무너지도록(삼광사 33만 신도), 이 땅 가운데 있는 모든 사찰이 무너질 수 있도록……”
2007년 부산서 열린 <어게인 1907 대회(100년 전의 평양대부흥운동을 되살리자는 의미로 만든 문구)> 때, 부산 지역의 각 구 종교 현황을 소개하면서 한 기도다.
“상호 존중과 우호를 바탕으로 이슬람과 건설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공통의 가치와 진정한 형제애 발로로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은 정의, 평화, 존엄성과 모두의 권리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수 세기 동안 공존하다 지금은 전쟁의 공포로 고통 받는 지역(중동)에선 더 그래야 한다.”(2014. 11. 30)
이는 터키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와 두 교회의 화합을 위한 <우호선언>에 서명한 후 한 말이다.
기독교서는 기도(prayer/祈禱)를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그분과 영적인 만남’이라고 한다.
기도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는, 1) 두려움에서 벗어남, 2) 영적인 힘, 3) 인도와 만족, 4) 지혜와 깨달음, 5) 해악에서 구출됨, 6) 보상, 7) 좋은 선물, 8) 충만한 기쁨, 9) 평화, 10) 걱정에서 해방을 들고 있다. (<신약성경 용어사전>/안병철/가톨릭대학교출판부)
그런데 실제의 기도는, ‘신이나 절대적 존재에게 바라는 바가 이루어기를 비는 것’이 대부분이다.
위와 같은 고급(?) 기도보다는, 탐욕을 채우고 복을 빌고 남을 저주하는 저급(?) 기도가 더 많다.
그렇다고 후자의 것을 마냥 비난할 수만도 없을 것 같다. 기도의 응답 여부와 관계없이 심리적으로는 위로/보상의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것들을 모아 봤다.
# 1. 포로가 된 독일 군인이 영국군 보초에게 말했다.
“왜 우리는 항상 전쟁에 지는지 모르겠소. 우리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쟁해 왔는데 말이오?”
그러자 보초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야 당연히 당신들이 지게 되어 있지. 우리는 항상 하느님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오. 우리가 싸우기 전에 하느님께 기도하면 신은 그 응답으로 우리를 보호해 준단 말이오. 그러니 당신들이 지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소?”
이 말을 들은 독일군 포로가 의아한 듯 말했다.
“기도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진데……”
“글쎄요? 하느님이 독일 말을 알아들을까요?”
# 2.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 가장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부디 제 아내의 암을 고쳐주십시오.”
“당신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제 아들이 취직을 못 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자비를 내려 주소서. 제 아들이 제발 빨리 취직하도록 해 주십시오.”
# 3. “명심하게 친구여, 구하고 비는 것은 기도가 아닐세. 신은 해결사가 아니니 말일세. 또 신은 청각장애인이 아닐세. 그러니 그대가 속삭이는 소리로 말하더라도 다 알아듣는다네. 하긴 그대가 아무 말도 않으면 신은 더 잘 알아듣는다네. 신은 침묵을 더 잘 이해하니 말일세.”(Kabir/북인도 종교가로 평생을 방직공으로 살면서 시를 씀/1440∼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