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방편의 세계
모르고 있던 사물의 본질이나 진리 따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나, 모르고 있던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불교서는 이 깨달음을 ‘존재의 실상을 확인하는 것/수행이 완성되어 증득(證得/깨달아 얻어지다) 된 상태’라기도 한다.
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개개인의 근기(根機*)가 다르기 때문이다.
칸트 식으로 말하면, 1) 진위(인식/순수이성비판), 2) 선악(윤리/실천이성비판/선악), 3) 미추(미학/판단력비판)를 가리는 생각/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는 가르치는 사람의 근기*에 맞춰 방편**을 개발해 이용했다.
이런 방편들은 우리들 일상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이어서 한 가지 소개해 본다.
한 마을에 무시무시한 살인자가 있었다. 그는 사회의 냉대에 복수하기 위해 천 명의 사람을 죽이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사람의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 내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손가락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남자/앙굴리말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구백구십구 명을 죽였다. 이제 한 사람만 더 죽이면 목표가 달성될 판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소식만 들어도 근처에 얼씬도 않았다. 그래서 최후의 한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부처가 그가 있는 숲 근처를 걸어가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말했다.
“그 쪽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미치광이 살인자가 있습니다. 그 녀석은 무작정 사람을 죽입니다. 부처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길로 가지 마십시오.”
부처가 말했다.
“그는 지금 마지막으로 살해할 사람을 찾고 있다. 그러니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는가?”
그는 자신의 맹세를 거의 완수할 단계에 와 있었다. 힘도 넘쳤다. 그래서 왕들도 장군들도 그를 두려워했다. 법률가나 관리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다. 그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내가 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깨달은 사람이니 그가 나를 죽이든 내가 그를 죽이든 둘 중 하나다.”
부처가 그의 곁에 갔을 때는 따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어린 아이와 같이 순진한 부처를 보고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비한 아름다움과 자비심을 느꼈다. ‘이 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길을 지나갈 리 없다. 보통 사람과 다르다. 죽이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자.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겠는가?’
앙굴리말라가 말했다.
“돌아가라! 앞으로 한 걸음도 내 디디지 마라. 나는 앙굴리말라다. 여기 구백구십구 개의 손가락이 있다. 지금 내게는 손가락 하나가 더 필요할 뿐이다. 네가 누구이든 상관치 않는다. 나머지 한 명을 죽여서 내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마라. 너는 훌륭한 수도승일지 모르지만 그런 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멈춰라.”
그러나 부처는 계속해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는 귀가 먹었든지 아니면 미친놈일 것이다.’그리고 다시 소리쳤다.
“멈춰라! 더 이상 움직이지 마라.”
그 때 부처가 말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멈추고 있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움직이는 것은 너다. 나는 줄곧 멈춰 있었다. 모든 움직임은 내게서 사라졌다. 모든 동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동기가 없는데 어떻게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 나에게는 목표도 없다.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그러니 내가 왜 움직이겠느냐?”
“너는 정말로 미쳤구나. 나는 앉아 있는데 움직이고 있다고 하고, 너는 움직이고 있으면서 멈추고 있다고 하니 너야말로 완전한 바보거나 아니면 미친놈이다. 나로서는 네가 어떤 자인지, 무슨 일을 하는 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부처가 가까이 다가서면서 다시 말했다.
“나는 그대가 손가락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 있는 이 육체에 관한 한 내 목표는 달성되었다. 이제 나에게는 쓸모가 없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이 육체를 태워 버릴 것이다. 그러니 네가 이 육체를 이용해 목표는 달성하라. 그러기 위해 나는 네게 왔다. 이것이 내 육체가 어떤 방법으로든 사용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 이 주변에 미친놈은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영리한 체 하지마라. 나는 위험한 인물이란 말이다. 언제든 너를 죽일 수 있다.”
“그러면 나를 죽이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을 들어다오. 곧 죽을 사람의 마지막 소원이다. 이 나뭇가지 하나를 잘라주지 않겠나?”
그 정도는 너무 손쉬운 일이라는 듯 칼로 나무를 내리쳤다. 그러자 큰 가지 하나가 잘렸다.
“그러면 다시 한 가지 더 부탁한다. 그 나뭇가지를 다시 나무에 붙여 보라.”
“이로써 네가 미친놈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나는 잘라 낼 수는 있어도 붙여 놓을 수는 없다.”
“파괴는 가능해도 창조하지 못한다면 함부로 나뭇가지를 잘라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용기가 아니다. 이 가지는 어린 아이도 자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원 위치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스승이 필요하다. 너는 나뭇가지 하나 되 붙일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러면서 사람의 목을 자르려 하느냐? 이제까지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순간, 앙굴리말라는 부처의 발아래 엎드리며 말했다.
“저를 그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다음 날부터 그는 탁발승이 되어 마을을 다니며 구걸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문을 닫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비록 저 자가 탁발승이 되긴 했어도 아직은 믿을 수 없다. 저자는 여전히 위험한 인물이다.’라며 외면했다. 그가 아무리 구걸을 해도 누구 하나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창가서 내다보기만 했다. 그를 향해 돌을 던졌다. 마을 사람 구백구십구 명을 죽였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집이 그에게 희생된 집이었다. 그는 길 위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 때 부처가 제자들과 함께 와서 물었다.
“그래, 느낌이 어떠냐?”
앙굴리말라가 감았던 눈을 뜨면서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 육체는 죽일 수 있지만 진정한 ‘저’는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오면서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처가 말했다.
“너는 이제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
◘ Text image/원암 장영주 작품
*根機: 중생이 교법(敎法)을 듣고 제각기 이를 깨달을 만한 능력.
**方便: 1)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일을 쉽고 편하게 치를 수 있는 수단과 방법. 2) (불교) 십바라밀(十波羅蜜)의 하나로, 보살(菩薩)이 중생을 근본적인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쓰는 묘한 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