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정치 雜常

乘風破浪 2020. 3. 29. 15:09

 

“정치란 범죄계급 중에서도 특히 저급한 족속들이 즐기는 생계수단이다.”

“국회란 법률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화합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미국 독설가 앰브로스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이른 아침/2005>의 말이다. 과장/왜곡된 말이긴 하지만 정곡을 찌른 것이기도 하다. 선거철인 지금은 더 실감이 나는 말이다.

 

흔히들 세간사를 논할 때는 대개 그 논제의 정의나 원칙에 비춰서 논한다. 결과는 대부분 실망이다. 정의나 원칙은 상식적/원론적/이상적인데 반해, 현실은 뒤죽박죽이고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간사를 “제어 불능의 이기심을 가진 ‘인(人)의 간(間)’들이 펼치는 서이벌 게임”이라고 보면, 어지간한 일은 “다 그런 거지 뭐…”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를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는 일’이라고 보면 실망스러운 것 투성이다. 그러나 정치를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과 권력을 얻거나 늘이기 위해 사회적으로 교섭하고 정략적으로 활동하는 일’이라고 보면, ‘정치도 행정과 더불어 정치인이 사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강준만)’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이런 틈을 노린다. 1)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라' 며 정치 혐오증이나 기피증을 조장하면서, 2) 자신들만의 잔치(이권잔치)를 벌리기 때문이다. 3) 그와 병행해서 보수/기득권 세력들은 암묵적 카르텔을 만들어 교묘하고 집요하게 대중을 향한 프로파간다도 펼친다. 이런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만약 대중심리의 동기와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을 우리의 의지대로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대중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에 대한 교묘하고 의도적인 조작은 민주주의 사회의 중요한 요소이다. … 일상생활에서 대중의 사고와 행동, 그들이 따르는 윤리적 규범은 사회 최상층에 있는 소수에 의해 결정되어 아래로 미치는 것이다. 이 소수는 대중의 생각과 행동에 있어 무엇이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움직이게 하는지 잘 이해한다. 대중의 사유를 조종하는 여러 개의 끈을 잡아당겨 실질적으로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들이다(에드워드 버네이스/미국 홍보활동가).

 

여기에 심리학은 이런 어물쩍한 이론을 보태기도 한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할 때는 누구라도 웬만큼 이성적이고 분별력을 가지지만, 군중의 일원이 되는 순간 바보가 되고 만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인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비상식적인 말이나 거짓말을 반복한다.

예를 들어,‘체포·구금·위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견해를 발표할 수 있으면 자유/민주 사회이고, 반대인 경우는 독재/공포 사회다(민주주의를 말하다/나탄 샤란스키)인데도, 보수 세력은 지금 우리나라가 독재사회라고 반복해서 떠든다. '반복된 거짓은 진실이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웃프게도 이런 논평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정치를 단지 구경거리로 소비하고자 한다면, 한국 정치인들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구경꾼의 분노와 저주를 유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노와 저주는 관심의 산물이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처럼, 우리는 욕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다음에 나올 정치 뉴스를 기다리곤 한다. 배설 욕구에 굶주린 구경꾼들에게 이렇게 일관되게 분노와 저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먹잇감을 제공해주는 고급 엔터테인먼트가 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강준만).”

 

정치가 고급 엔터테인먼트화 했다고?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재난생계지원금 등 각종 경기부양책이 잘 말해주듯, 정치는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행위 아니던가.

여기서 체 게바라의 이런 말을 하나를 떠올려 본다.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가 되라. 그러나 이룰 수 없는 이상도 한 자락 가지고 있어라.”

 

◘ Text image/Che Guevara(1928~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