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 6 / 칸트와 타고르
# 1.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불리는 칸트(1724~1804)에게 한 청년이 물었다.
"선생님, 신이 무엇입니까?"
칸트는 화를 벌컥 내면서 되물었다.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 되묻겠네. 자네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말해보게나."
한 참을 망설이던 청년이 대답했다.
"저는 한때 사랑에 빠져 그 기쁨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랑이 무엇인지 말하려고 하니 참으로 어렵군요."
기다렸다는 듯이 칸트가 말했다.
"나 또한 마찬가질세. 사랑이 무엇인지, 신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단 말일세. 내가 비록 그것을 경험했을지라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단 말이네. 내 전 생애의 탐구를 통해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말로 하기가 두렵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즉시 '그러면 그것의 정의를 내려 보시오.' 하고 따지고 들게 분명하기 때문일세. 실제와 언어적 정의는 언제나 빗나가기 마련 아닌가?"
# 2. 인도문학을 서양에 소개하고 서양문학을 인도에 소개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기탄잘리>로 노벨문학상도 수상(1913)했으며, 동아일보 창간에 즈음해서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를 기고해, 나라를 빼앗긴 한국인에게 큰 감동도 안겨 주었던 시인 타고르(1861~1941)는 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을 찾아 수없이 많은 전생을 거쳐 왔다. 그리하여 신의 희미한 섬광을 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향해 달려 가 보았다. 하지만 내가 근처에 도달했을 때 신은 저만큼 먼 곳에 있었다. 또 나는 가끔 신의 춤을 보기도 했고, 그가 부는 피리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신에 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 하나의 도전이요 탐구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신의 집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몇 걸음만 더 나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막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나의 손은 갑자기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돌연 이런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문을 열기만 하면 나는 이제 신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나의 전 생애는 오로지 신에 관한 탐구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신을 만난다면 나의 탐구 생활은 끝날 것이다. 내 삶에서 도전과 탐구가 없어진다면 죽은 삶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 나는 신발을 벗어들고 신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다. 행여 신이 내 발소리를 들을까 조심하면서……. 그 후 나는 또 신을 찾아다녔다. 나는 신이 있는 곳을 알기 때문에 그가 있는 곳을 제외하고 모든 곳을……. ‘신은 어디 있는가? 신은 누구인가?’라고 외치면서…….”
이런 담론들을 접할 때마다 난감함과 당혹감에 빠진다. 또 마뜩치 않은 내용에 토라도 달려고 하면 주눅부터 들기도 한다. 워낙에 큰 동/서의 거인으로 세계사에서 추앙을 받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히 토를 달아 본다. 첫째, 신을 위와 같이 모호하게 얼버무려 놓으면 혼란만 더 커질 거라는 것과, 둘째, 신은 필요한 사람들이 필요에 맞게 고안해 낸 것일 거라는 토다. 기존의 권위에 주눅들고 기죽어 사는 한, 진정한 내 삶은 이룩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달아본 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