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필요하다(?)
한 목사가 길에서 상처 입은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목사는 그를 돌봐 주려다가 교회에 늦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돌아섰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목사님, 난 당신이 사랑을 주제로 설교하러 간다는 걸 알고 있소. 나도 교회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강도를 만나 이렇게 됐소. 잘 들어 두시오. 만일 내가 살아난다면, 길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당신이 구하지 않고 도망쳤다고 말할 것이오.”
놀란 목사는 그 남자를 다시 보고는 낯이 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아마 날 알 것이오. 난 악마니까요. 난 목사님들과 아주 예전부터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잖소. 내가 당신에게 낯익지 않다면 누구와 낯이 익겠소.”
목사는 생각이 났다. 교회의 벽화 속에서 그 남자의 얼굴을 봐 왔기 때문이다. 목사가 말했다.
“나는 당신을 구해 줄 수 없소. 우리는 당신을 만지는 것조차 죄악이오. 우린 늘 당신이 죽기를 원해 왔소. 당신은 죽는 게 났소.”
악마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죽는 날에는 당신들은 할 일이 없어질 것 아니오? 당신들이 나 없이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소? 내가 있기 때문에 당신들은 존재하는 것 아니오? 나는 당신들 직업의 토대이니 당신은 나를 구해 주어야 하오.”
곰곰이 생각해 본 목사는 그 말 속에 진실이 담겨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 남자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오, 친애하는 악마여, 걱정할 것 없소. 내 그대를 치료받게 해 주리다. 아무쪼록 빨리 나으시오. 제발 죽지 마시오. 만일 그대가 죽으면 우리 일자리는 없어지고 말 것이오.”
종교적으로는 악마를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거나 나쁜 길로 유혹하는 마귀, 또는 매우 흉악한 짓을 하는 사람이나 사물’이라고 한다. 반면 학자들은 악마를 ‘사회질서 붕괴에 대한 공포의 반영물’, ‘선한 신의 상보적 관계와 이원론적 세계관의 버팀목’이라고도 한다.
도깨비가 실재 아니듯 악마 또한 실재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도 실재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사회적 비리나 불가항력적 일, 또는 불행의 책임을 악마에게 돌리거나, 자기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다. 참으로 편리한 적응기제(adaptive mechanism)다. 그래서 예로부터 갖가지 악마를 만들어 이용해 왔다. 15∼17세기 유럽 기독교 지배세력이 저항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만든 50여만 명의 마녀사냥이 좋은 예다.
당시 마녀에게 씌운 죄목은, 1) 악마와 계약을 맺은 죄, 2)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 죄, 3) 불법적인 악마연회에 참석한 죄, 4) 악마에게 예배한 죄, 악마 꽁무니에 입 맞춘 죄, 5) 얼음같이 차디찬 성기(性器)를 지닌 남성 악마인 인큐비(Incubi)와 성교한 죄, 6) 여성 악마인 서큐비(Succubi)와 성교한 죄라는 터무니없는 것이었고,
이런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는, 1) 채찍으로 후려치기, 2) 회초리로 두들기기, 3) 스크루로 손가락을 찌부러뜨리기, 4) 집게로 이빨을 뽑기, 5) 날카로운 칼로 피부 벗기기, 6) 무거운 물건을 몸에 묶어 공중에 매달기, 7) 굵은 밧줄로 꽁꽁 묶기, 8) 유황으로 지지기, 9) 뜨거운 기름을 온몸에 바르기, 10) 끓는 물에 빠트리기, 11) 불로 그을리기, 12) 천정까지 끌어올렸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기, 13) 빙글빙글 돌리기, 14) 머리를 거꾸로 하여 공중에 매달기 등의 고문을 자행했다. (<문화의 수수께끼>/마빈 해리스/박종렬 역/한길사/1982)
기독교 등 몇몇 종교서는 신을 ‘선(善)’으로 상정해 놓고, 그의 대척(對蹠)으로 악마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 이익에 반하는 세력을 악마로 매도했다. 예를 들면, 기독교로 무장(?)한 자본주의 열강세력이, 이슬람교/불교/코페르니쿠스/마르크스/공산주의/사회주의/베트콩/아옌데/쿠바/북한/빈 라덴/후세인 등을 악마로 매도한 것도 좋은 예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정도 예외는 아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친일/기독교/기득권 세력이 북한을 악으로 규정한 다음, 자신들 이익에 반하는 세력을 빨갱이(악)로 매도해 왔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기독교계 저명 지도자라는 사람이, “문재인 정권은 그들이 추구하는 주체사상(악)을 종교적 신념의 경지로 만들어, 청와대를 점령하고 검찰, 경찰, 기무사, 국정원, 군대, 법원, 언론, 심지어 우파시민단체까지 완전 점령하여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문재인은 자신의 잘못된 신념으로 전 국가와 국민에게 북한 공산주의 이념인 주체사상을 강요하고 있다(전광훈).”는 말을 했는가 하면,
한 전직 국회의원은, “입 달린 의원 한명이라도 외쳐야 한다. 문재인은 빨갱이라고(차명진)!”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그 대답이 아래 말에 있지 않나 싶다.
“남북한 관계 개선은 보수 정권이 권력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남한의 보수 정권이 남북 평화정책을 펼 이유가 없다. 늘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을 부추기고, 위기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보수 세력에 이익이 되고 기득권 수호에도 필요하다(노엄 촘스키/2016. 2. 21).”
과연 우리는 언제, 악마 없는 세상에서 살아 볼 수 있을 것인지……
* 믿음 : 믿는 마음/그렇다고 여기는 바/논리가 근거 없이 비약하는 현상.
◘ Text image/만들어진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