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고 다양하다.
1) 존재의 근본 이치나 원리를 규명하는 것을 비롯해,
2) 물리적 우주 전체의 본질/작동 원리 밝히기,
3) 바람직한 삶의 의미/양식의 추구와 정립,
4) 우주나 인생에 대한 궁극적 해답 찾기,
5) 인생관의 고찰과 구축,
6) 개념에 대한 논리적 조명,
7) 언어 분석을 통한 개념의 명료화 작업
8) 우리는 무엇이고,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밝히는 것들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총괄적 개념으로서의 우주에 대한 올바른 앎(지식/진리)의 추구⌟ 라 뭉뚱그리기도 한다.
그럼, 앎/지식이란 어떤 것일까?
첫째는 ‘얼음이 차다’라는 것 같은 것으로 직관적으로 얻는 지식이다. 바로 1차적 지식/직접적 지식이다.
둘째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만유인력 때문이다’같은 것으로, 1차적 지식을 이성적 논리적으로 추리해 얻는 지식이다. 이는 2차적 지식 또는 간접적 지식이다.
이런 지식이 진정한 지식이 되려면 반드시, 1) 경험적으로 입증 이 될 수 있어야 하고, 2) 논리적으로도 설명이 될 수 있어야 하며, 3) 객관성이나 보편성이 담보되어야 하고, 4) 정상적인 사람들의 동의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것은 사이비 지식임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한 예로 형이상학적 지식은 이성을 통한 간접적 지식이고자 하지만, 1)과 2)에 위배된다. 또 종교의 ‘신’이라는 지식은 위 모두에 위배된다. 이런 점은 이성의 발전에 힘입어 오늘날에는 상식에 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부 철학자들은, ‘신’이라는 지식이 진정한 지식이라고 막무가내로 우긴다. 이성이나 논리를 무시하고, 다양한 억지 논리를 생산해 유통시킨다. ‘반복된 거짓은 진실이 된다(히틀러/나의 투쟁)’는 점을 악용해 끊임없이 반복한다. 더욱이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죽음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심에도 호소한다.
또한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도 한다. 이성을 초월해 있다고 믿어지는 존재를 이성으로 증명하려고도 한다. 이런 시도는 그 자체로 모순이고 자가당착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철학이 그런 시도를 그치지 않으니, <부역附逆(?) 철학>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논리로 알 수 있는 대상과 직관으로 알 수 있는 대상은 완전히 다르다. 신의 존재는 오로지 직관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신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손해가 없다(파스칼).”라든가,
“진리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신은 과학적 철학적으로 파악될 수 없다. 신에 대한 믿음은 투신적(投身的) 무조건적 신앙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키르케고르).”라는 논리다. 이처럼 믿음을 도박이나 투신행위로 본 것 자체가 스스로 모순을 인정한 게 아닐까. 더 황당한 논리도 많다.
첫째, 개념과 존재를 혼동한 논리다. 우리는 ‘엉덩이에 뿔난 사람’이라는 개념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재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마찬가지로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제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마치 존재라는 개념 속에 속성적 개념이 들어 있다는 식으로 호도하기도 한다.
둘째,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우주란 모든 현상의 총괄개념이다. 그런데 모든 현상에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 원인이 우주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인격적 신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그 신이라는 현상의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무한 순환논리에 빠질 뿐이다.
셋째, 만물은 어떤 목적 하에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꽃이 피는 목적은 나비를 불러 수정을 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신의 목적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다행히 과학과 이성의 발전으로, 목적이 있어 보이는 모든 행위란 단순한 물질의 인과법칙이라는 점이 밝혀진 상태 아니던가.
이런 논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프로이트의 얘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자립할 수 없는 아이가 자신을 보호해 줄 아버지를 필요로 하듯이, 죽음의 공포와 절망을 안고 사는 인간은 그것을 불식시켜 줄 초월적 인격적인 존재를 필요로 한다. 신은 이 같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의 심리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즉 미숙한 심리상태인 인간들의 발명품일 뿐이다. 따라서 명징한 이성으로 이 환상에서 벗어날 때, 더 나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래식과 선시 (0) | 2019.03.17 |
---|---|
哀絶陽, 어제와 오늘 (0) | 2019.03.11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0) | 2019.02.24 |
神 10 / 고구⋅통찰⋅관조 (0) | 2019.02.19 |
메멘토 모리 - 3 (0) | 2019.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