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자연/우주/인간에 관한 근본원리를 밝히는 학문’이다보니, 철학에 대한 정의도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1) 우주 전체의 본질과 작동원리 규명, 2) 존재의 근본 이치나 원리 규명, 3) 우주와 인생에 대한 궁극적 해답 찾기, 4) 인생관의 고찰과 구축, 5) 진리의 규명 활동, 6) 바람직한 삶의 의미나 양식 추구, 7) 개념에 관한 논리적 조명, 8) 우리는 무엇이고,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학문 등.
평소 철학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절실한 것도 아니고, 내용의 난해성도 있고, 무용성 또한 제기되어 잘 읽어지지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지적들이었다.
1) 신학적 형이상학적 담론은 궤변과 망상에 불과하다(흄).
2) 지금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는데 그쳤다. 이제부터 철학이 할 일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1848/공산당선언/마르크스).
3) 철학이란 무엇인가? 가장 유명한 철학자들의 저서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그들의 말을 들으면 사기꾼으로 보이지 않는가(루소)?
4) 모든 진리는 거짓이다! 모든 진리는 메타포에 지나지 않는다(니체).
그러나 철학이 인간의 근본적/구체적 생활에 기반 한 것임은 분명했다.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 사람 철학은 뭐지?’라는 말로, 철학을 인생관/세계관의 동의어로 쓰니 말이다. 그래서 간간이 철학책을 읽어 왔지만, 단편적이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1978년 경,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를 하는 친구가 베스트셀러라며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를 소개했다. 제목 그대로 15명의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여서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아뿔싸! 책 중반, 35쪽 불량의 니체 편에서 그만 꽉 막히고 말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가정/학교/사회서 배우고 익혀온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읽고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도, 납득도 할 수도 없었다. 직감적으로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니구나.’하는 느낌도 왔다. 당시 밑줄 쳐 둔 것 몇 가지만도 이런 정도였다.
1) 모든 진리는 거짓이다.
2) 연민에는 야비함과 심술이 있다.
3) 무엇이 악인가? 모든 연약한 것이다.
4) 인간은 인간이 만든 세계만을 이해한다.
5) 우리는 너무 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6) 문법을 집어치우지 않고는 신/神도 집어치울 수 없다.
7) 사랑을 하면서 동시에 현명한 남자는 있을 수 없다.
8) 인간은 오로지 언어의 틀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9) 민주주의는 범용(凡庸)의 숭배와 탁월성에 대한 증오를 의미한다.
10) 정신, 이성, 사고, 의식, 영혼, 의지, 진리 이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11) 예수는 너무 일찍 죽었다. 만일 그가 원숙한 나이까지 살았더라면 자신의 가르침을 철회했을 것이다. 그럴 만큼 그는 고상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먼 훗날, 퇴직 후의 숙제로 미뤘다. 물론 간간히 생각 났지만 그리 절박하지도 않아 또 미뤄졌다. 그런 걸 몰라도 직업생활이나 일상생활에 별 지장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마냥 미루고 미뤄졌다.
그런데 70대 후반에 이르러서 옛 숙제 생각이 났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났다. 아니 더 이상 미루면 영원히 모르고 죽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40여년 만에 숙제를 해 보기로 했다.
눈에 들어오는 철학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쉬엄쉬엄, 아니 쉬지않고 3, 4년 읽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은 2번이고 3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납득할 수 없는 명제들은 TV를 보면서도, 운동을 하면서도, 버스 안에서도 고구해 봤다. 노인 특유의 축적된 경험에 비춰보기도 했다. 그래도 납득할 수 없는 것들 천지였다.
예를 들면 <하늘은 푸르다>는 단순한(?) 명제 앞에서,
1)내가 지금껏 알고 있는 하늘의 푸른 색은 과연 내가 직접 알아 낸 것이었던가?
2) 그건 언어를 통해 배워 온 것이 아니던가?
3) 내가 직접 하늘을 보고 ‘푸르다’고 인식하고 규정한 것이었던가?
4) 나는 ‘있는 것으로써의 존재인 하늘’이라는 현상을 알 수 있는 것인가?
5) ‘하늘’이라고 언어로 표상되기 전, 즉 알몸으로써의 하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6) 마찬가지로 언어 이전의 우주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등 끝없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였던가가? 기존의 철학이나 종교서도 궁극적 존재를,
이데아(Idea/플라톤), 범천(梵天/힌두철학), 도(道/노자), 공(空/無/붓다), 태극(太極/유교), 신(神/기독교), 절대정신(Geist/헤겔), 존재(Sein/하이데거), 권력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니체), 대자(pour-soi/사르트르) 등으로 칭하지 않았던가?
또 유대인들마져 신이 언어로 표상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정의될 수도 없고, 발음조차도 할 수 없는, 자음만으로 ‘YHWH'라 칭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인식론, 논리실증주의, 현상학, 분석철학(언어철학) 등을 읽으면서, 진리가 어떤 것인지, 언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쬐끔’씩 감이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80에 즈음하여, 겨우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니체가 왜, 무슨 의도로 그런 주장을 폈는지도 ‘쬐끔’은 알 것 같았다.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라(朝聞道 夕死可矣/논어)”는 경지와는 한참 멀지만,
‘몰랐던 걸 알았을 때 유레카(Eureka)!’하는의 기쁨은 얻을 수 있었다.
이에 뒤늦게 안 것을 정리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몇 가지 정리해 보기로 했다. =>다음 회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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