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해 진 한 랍비가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에 왔다. 그가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던 농부가 물었다.
“그래,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랍비도 물었다.
“자네에게는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농부가 대답했다.
“글쎄,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면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이후 그 랍비는 인생의 지침을 말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내 고향의 농부 말처럼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면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우리는 노력을 삶의 최고 덕목으로 꼽기도 한다.
노력이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부지런히 애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력을 통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노/努자가 ‘종·노예·포로들이 힘쓰는 것’을 뜻하듯이, 노력은 무언가 하기 싫은 것을 참고 억지로 애써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잠이 안 올 때 억지고 잠들려고 노력하면 더 잠이 안 온다든가,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면 더 안되듯이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억지로 애를 쓰지(노력) 않아도 된다.
즐거움 속에서는 그것에 몰입해 거자연스럽게(Be natural) 물 흐르듯이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능률도 극대화된다. 또 몰입의 무아경에서는 자아를 의식*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움/창의**도 피어난다.
이런 것은 노력과는 다른 차원이다.
시인 콜리지는 자신의 시를 ‘내가 쓴 것이 아니라 내가 텅 비었을 때 어디선가 내게 그냥 들어 온 것’이라 했고,
발명가 에디슨은 자신의 발명품을 ‘내 머리가 텅 비고 완전히 이완되었을 때, 문득 영감처럼 어딘가에서 온 것’이라 했고,
공자는 일/삶에 대해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목표 성취를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노력) 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것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삶이 행복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따라서 가정/학교/사회에서는 진로교육을 통해, ‘각자가 좋아하는 일/직업을 찾아서 그것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니체도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된다’고.
여기서 노력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를 떠올려 봤다.
한 선사(禪師)가 손수건을 마룻바닥에 떨어트리고 제자에게 말했다.
“그것을 집어서 내게 돌려주려고 노력해 보라.”
그래서 제자는 즉시 그것을 집어 스승에게 드렸다.
그러자 스승은 다시 손수건을 떨어트리며 주어보려 노력해 보라고 했다.
이어서 같은 일이 여섯 번이나 반복되었다.
제자는 그제 서야 스승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그건 그냥 집어 들던지 아니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수건 줍는 일에 노력합니까?”
“그렇다. 명상도 그냥 하든지 하지 않든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3년 동안이나 명상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사람들은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할 때 노력을 한다.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선행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노력하는 것은 모두 속임수다. 집에 불이 났을 때 밖으로 나오려고 노력하느냐? 그냥 밖으로 나오지……”
*意識을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라고한다면, 의식은 과거에 보고 듣고 겪은 것의 총화(旣知의 總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의식에서 나온 것은 순수한 창의가 아닐 수도 있다.
** 創意 :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
◘ Text image/원암 장영주/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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