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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의심없이 발전없다

예로부터 학계에 불문율처럼 전해져 오는 말이 하나 있다. “모든 학문의 귀결점은 철학이다/인간 일생일대 최상의 과업은 철학이다.”라는 것이다. 철학이 우주/자연/존재의 근원적 원리와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삶을 규제하는 경제/사회/정치/문화/교육/전통/관습/종교/과학/예술/이념/체제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기도 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철학을 어렵게 생각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반성적 사고를 거듭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전체적/근원적/반성적 사고를 계속하다보면 사물의 새로운 지평도 열 수 있는데 말이다.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달을 수 있는데도(大疑則有大悟)말이다.

문제는 예로부터 우리는 가정/학교/사회서 배운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교육을 받아 왔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이념/체제/규범 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교육 받아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1) 당연한 것을 의심해 보는 태도 2) 사물을 외골수로 파고 드는 집념 3) 비난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 등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 비춰 우리가 귀감으로 삼을 만한 사람을 든다면 아마 니체가 아닐까 한다.

그는 이런 황당한(?) 의심을 품음으로써 2,000여 년의 유럽 사상에 새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도덕적 가치의 의미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서 인정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인류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선한 인간이 악한 인간보다 높은 가치를 대표한다는 점을 의심해 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선한 사람이 인류의 후퇴를 의미할 뿐 아니라 인류에 위험이라면 어떻겠는가?(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의문을 품은 것일까? 그 논리를 살펴보면, 비록 그의 주장에 동의는 못할망정, 반성적 사고나 철학적 사고의 수월성/유용성만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를 통해 1) 낭비적 삶도 줄일 수도 있고, 2) 이념/체제 허구성을 이해함으로써 더 많은 자유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후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사고는(철학은) 이성중심주의였다. 즉,

1) 구체적 사물의 존재는 말할 것도 없고

2) 선과 악도 물질적 존재는 아닐지라도 객관적 존재라고 생각했고,

3) 신이 만들어 낸 어떤 객관적 존재 규범이라고 생각했고,

4) 숨겨진 금덩이를 찾듯이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여김으로써,

5) 얼마든지 그것을 이론적으로 발견하고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6) 그래서 이들은 ‘무엇이 선/악이냐?’는 질문의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 질문이 1920년대의 분석철학에 의해  ‘선/악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면서,  그 오류성(허구성)이 드러났다.

예를 들면, ‘하늘을 푸르다’‘하늘을 아름답다’는 문법적으로 같다. 그러나 전자는 대상에 대한 외연적/서술적 의미이고, 후자는 내포적/감정적 의미다. 즉 전자는 존재 대상의 객관적 상태를 지칭한 것인데 반해, 후자는 존재에 대한 언어 사용자의 태도나 감정을 지칭한 것이다. 이처럼 내포적/감정적 언어인 '아름답다'는  ‘가치’를 나타낸 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가치는 물질적이거나 관념적이거나를 막론하고 어떤 종류의 존재도 아님이 자명해 진다. 물론 선/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이런 서술적 언어와 감정적 언어의 기능과 문법구조를 혼동/착각/오해한 나머지, 2,000여 년 동안이나 ‘아름다움/선/악’이라는 가치를 나타낸 말을 ‘아름다운 것/선이라는 것/악이라는 것’이라는 존재로 여겨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가치가 그렇듯이 선과 악도 물질적 존재가 아닐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존재도 아님이 명명백백히 드러났다. 가치란 어떤 존재/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대상에 대한 인간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니체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분석철학보다 50여년 앞서 밝힌 것이다. 

이를 바탕에서 니체는 한 발 더 나갔다.

즉 선과 악은 보이지 않는 신비스러운 가치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두 부류의 인간을 구별할 필요에서 생겨난 개념이라는 주장이다. 각기 서로 대립되는 두 부류의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 ‘귀족과 천민 대 영주와 노예’를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회계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성격이나 인격을 이르는 개념이었다. 인간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떠나 원래부터 ‘영주 같은 형 대 노예 같은 형’이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활기차고 솔직담백하고 적극적인 인간형이며, 후자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허약하고 무능하고 비겁하고 소극적인 인간형을 가리킨다. 어원학적으로도 원래의 도덕적 가치의 개념인 ‘선’은 전자의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악’은 후자의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니체에 의하면 귀족적 인간의 모든 행동과 성격은 선이었고, 평민적 인간의 모든 행동과 성격은 악이었다는 논리다. (그의 선/악에 대한 논리는 <40년 묵힌 숙제 - 4/5 2019. 7. 24> 참조)

⌜도덕적 가치의 기본 개념은 언제나 계급적 뜻으로서의 계층을 나타내는 귀한 것이다. 이 귀한 것이란 개념으로부터 역사적 필연성에 의해서 정신의 고귀성, 정신적 특수성을 나타내는 선이라는 개념이 발견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변화와 같이 병행해서 평범/평민이라는 개념이 악이라는 개념으로 개종되었던 것이다.(도덕의 계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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