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절묘한 행위예술-2

모든 예술의 콘텐츠는 일종의 허구이기도 하다. 예술의 역할이 비 실재를 통해 실재를 느끼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예술의 궁극 목표가 의식의 환기(喚起/어떤 감정이나 사실/주의 따위를 불러일으켜 느끼게 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느낌이나 의식 환기를 신체행위로 보여주는 것을 행위예술(happening/performance)이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면 의식의 환기를 통해 가르침을 편 불교의 방편(方便)이야말로 행위예술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환기하고자(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기발하고 신선하고 재미있는 비유적 행위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면 이런 퍼포먼스다.

어느 날 왕이 나가센 스님을 궁전으로 초대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다. 사자가 나가센에게 와서 말했다.

“스님, 왕께서 스님을 친히 뵙고자 합니다. 그래서 스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그러자 나가센이 말했다.

“왕께서 원하시면 가겠다. 그러나 여기에 나가센이란 사람은 없다고 가서 여쭈어라. 나가센은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표지에 지나지 않는다.”

사자가 돌아와 왕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그는 매우 이상한 사람입니다. 오시겠다는 대답은 했습니다만 나가센이란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왕도 의아했으나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나가센이 왕이 내 준 마차를 타고 궁전에 도착했다. 왕이 마당까지 나가 마중했다.

“나가센 스님, 당신을 환영합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전하의 환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 나가센이란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스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님이 나가센이 아니면 누가 저의 초대를 받은 겁니까?”

나가센은 왕이 자신의 방편(트릭)에 걸려든 것을 알아차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왕에게 자신이 타고 온 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은 제가 타고 온 마차지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스님이 타고 오신 마차지요.”

“그러면 신하들을 시켜서 이 마차에서 말을 떼 내 주십시오.”

마차서 말을 떼 내자 나가센이 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이 마찹니까?”

“어떻게 말을 마차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 스님의 지시에 따라 마차에서 막대기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그럼 이게 마찹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막대기지 마차가 아닙니다.”

이렇게 나가센은 마차의 부품을 하나씩 떼 내도록 지시하면서 묻기를 계속하자 왕은 그때마다 ‘그것은 마차가 아니지요’라는 대답을 계속했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자 스님이 물었다.

“이제 전하의 마차는 어디에 있습니까? 부품이 하나씩 떨어져 나갈 때마다 전하께서는 아니라고만 하셨습니다.”

왕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 하자, 나가센이 말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마차는 조립품이었습니다. 조그마한 물건들의 집합이었습니다. 마차는 자신의 존재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가센은 결코 제가 아닙니다. 전하의 내면을 한 번 들여다보십시오. 전하의 자아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전하가 있습니까? 바로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물론 이 퍼포먼스의 요지는 ‘공(空)’에 대한 가르침(환기)이다. 즉 반야심경/般若心經*의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21일 동안 묵상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깨달음을 중생에게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나 고해에 허덕이는 중생에 대한 연민(大慈大悲) 때문에 생각을 바꿨다.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적은 화엄경(華嚴經)을 내놓긴 했지만, 중생이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한 차원 낮추어,

1 단계로 소승계통(阿含部)의 경전으로 12년간,

2 단계로 대승계통(方等部)의 경전으로 8년간,

3 단계로 공 개념(般若部)의 경전으로 21년간,

4 단계로 대승경전의 최후형태라 할 경전(法華/涅槃部)으로 8년간을 가르쳤다. 반야심경은 이 중 반야부 600여 권을 압축/요약한 것이다(반야심경/라즈니쉬 강의/석지현 역주/일지사/1982).

반야심경의 핵심은 ‘照見五蘊皆空’인데,

1)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색(色), 2) 감각의 수(受), 3) 인식작용의 상(想), 4) 의지작용의 행(行), 5) 마음 작용의 식(識)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五蘊)가 모두가 공(空)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즉 ‘색과 공은 다르지 않고 그게 그거(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라는 것이다.

물론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위 퍼포먼스를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입해 보면 그 이치가 새롭게 드러나기(환기)도 할 것이다.

 

* 반야심경의 핵심은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渡一切苦厄’이라고 한다. 

- 이 25자의 뜻은, 관자재보살이 6바라밀(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般若)을 통해,

- 물질/色, 감각/受, 지각/想, 의지적 충동/行/, 식별작용/識이라는 五蘊을 꿰뚫어 보고(조견하고), 그것이 모두 빈 것임을 앎으로써 모든 고난에서 벗어 났다는 것이다.

- 나머지 217자는 이의 부차적 설명이며, 

- 마지막의 揭帝揭帝 波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僧莏訶 18자는 일종의 비밀진언(mantra)으로, 산스크리트어 ‘gate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를 음역한 것이라 한다. 그 뜻은 ‘가자, 가자, 더 높이가자,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라 한다. 그래서인지 이 진언은 뜻을 알고 모르고와는 관계없이,그냥 암송만 해도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주문呪文이라고도 한다.

-예수가 마지막으로 했다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도 일종의 만트라라고 하는 설도 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해/착각=> 왜곡  (0) 2021.05.07
의심없이 발전없다  (0) 2021.04.20
paraskevidekatriaphobia  (0) 2020.09.03
Globalism  (0) 2020.08.27
사일士 一이와 공일工一이는…  (0) 2020.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