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을 힘을 다해(필사적) 죽음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성찰을 한다.
상가/喪家를 다녀 온 후, 며칠간 조신/操身 해 지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로마인들은 폼페이 모자이크 속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문구를 넣어 놓기도 했고,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면 노예 한 명을 뒤에 세워놓고, ‘당신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도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Hominem te esse memento)’는 말을 반복케 했다고 한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고 써 놓기도 했고,
수많은 사람의 임종을 보살펴 준 마더 테레사는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루와 같다”고도 했다.
우리나라엔 더 절절한 경구도 있다. 시골 상여의 가로막대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천사만사허사/千事萬事虛事’라는 것이다. 모두가 ‘죽음을 기억(메멘토 모리)’해야 삶이 더욱 가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우리들에게 깊은 성찰을 안겨주는 두 죽음을 떠올려 본다.
53세 차이코프스키의 ‘기묘한 죽음’과 85세 노 혁명가의 ‘위엄 있는 죽음’이다.
차이코프스키 공식 연보의 끝 페이지에는 이렇게 서술된다.
“1893년 6월 케임브리지 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그해 10월 28일 성적 스캔들 때문에 명예를 위해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신적·음악적 유서인 교향곡 ‘비창’의 초연 직후의 일이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제정 러시아에서는 동성애는 발각되면 처형당했다. 그래서 그는 여 제자와 거짓 결혼을 해 보기도 했고, 한 밤에 느닷없이 방 안 가재도구를 부수기도 했고, 여러 차례 정신과 치료도 받아 보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의 동성애 행각이 드러나면 함께 곤란해질 것을 염려한 대학 동기들이 비밀리에 사설 법정을 열어 차이코프스키에게 자살할 것을 선고했다. 그는 친구들의 비정한 선고를 수용해 콜레라가 창궐한 오데사로 가, 병균 가득한 냉수를 들이켜고 사흘을 앓다가 죽었다.
향년 53세, 자살이고, 타살이며, 병사인 기묘한 죽음이다.(어떻게 미치니 않을 수 있겠니?/김갑수/오픈하우스/2014/174쪽)
노 혁명가 김학철 옹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자 아내와 내외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 죽거들랑 부고를 내지도 말고 추도식도 하지 말며 여기 적은 열 두 사람에게만 알려라. 시신은 태워 가루로 만든 뒤 두만강에 뿌려라. 남은 것이 조금 있거든 골회함 대신 우체국의 종이 우편박스를 사서 거기에 담아 ‘원산 앞 바다 행/김학철(홍성걸)의 고향/가족 친우 보내드림’이라고 적은 뒤 강물에 띄워라. 바람이 나를 고향에 데려다 줄 것이다. 내 마지막 가는 길에는 조선의용군추도가와 황포군관학교 교가를 불러 달라. 내 일생을 통해 가장 경계해온 것이 남에게 쓸데없이 폐를 끼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번거로움이니 며느리 너는 나 죽는 날에도 울지 말고 그냥 학교에 가라. 가서 평상시처럼 아이들을 가르쳐라.”
위엄있는 삶도 어렵지만 사람이 한명(限命)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위엄있게 맞기가 쉽지 않거늘, 그러나 선생은 그렇게 했다. 더는 목숨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일체의 병원치료와 주사를 거부하고 꼬박 스무하루를 굶은 뒤 소년처럼 머리를 면도로 깨끗이 밀고 간호사를 불러 관장하고 중산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남들이 다 잠자는 새벽 두시 반에 조용히 식구들을 깨워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평소 모습처럼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애기를 하시다가 그만 깜빡 저세상으로 가시었다. 입가엔 행복했던 날 손녀와 함께 짓던 미소 자국이 역력했으며 눈가에선 마지막 매섭고 밝은 빛이 빛났다.
향년 85세. 다음은 항일 전장에서 그가 쓴 시의 한 구절이다.
“밤소나기 퍼붓는 령마루에서/래일 솟을 태양을 우리는 본다.”(은빛 호각/이시영/창비/2003/58∼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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