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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역설의 변증 - 2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었다.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부제가 붙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으로 1990년대의 화제작이기도 했다. 내용은 모순어법(oxymoron)을 이용한 역설(逆說/paradox)적 제목처럼, ‘미래로 가는 길을 오래된 과거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 즈음 많은 문인들이 라다크로 몰려가기도 했었다.

 

역설이란 자체의 주장이나 이론을 스스로 거역하는 모순적 언설이지만, 그 속엔 심오한 진실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정설(定說)과 대립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이들 만들고 이용도 한다.

흥미도 끌고 참신한 사고도 유발하고 사물의 의미도 깊게 하기 위해서다.

‘살아있는 죽음/소리 없는 아우성/작은 거인/점보 세우’등 길고 짧은 역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미다스 왕 이야기’일 것이다. 인간 욕망의 역설성을 잘 드러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희망이 '희망에 역행하는 희망'임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역설적 일화 세 가지를 들어 떠올려 봤다.

얼핏 보면 그저 그런 내용 같지만 깊이 음미해 보면 철학적/사회적/심리적/미학적 의미가 새롭게 드러나기도 한다.

 

# 1. 한 남자가 큰 슬픔에 잠겨있어서 친구가 물었다.

“요즘 왜 그렇게 슬퍼 보이는가?”

사내가 대답했다.

“아내가 나에게 노름과 술과 담배를 끊으라고 해서 그걸 모두 끊었지.”

“그럼 자네 아내가 매우 행복해졌겠군.”

그러자 사내는 풀이 죽어 말했다.

“그게 문제였네. 이제 아내는 나에게 더 이상 불평거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지. 그녀는 그 무엇으로도 내게 책임을 지울 수가 없게 되었지. 그 다음부터 아내는 전에 없이 비참해졌단 말일세. 나는 그 모든 것을 그녀 말대로 끊으면 행복해 할 것이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었단 말일세. 아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아.”

 

# 2. 어떤 사람이 한 부호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부호는 자신의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을 내 주었다. 그 방은 화려한 가구로 가득 찬 방이었다. 너무나 많은 가구 때문에 출입하기조차 어려운 방이었다. 부호가 말했다.

“어떻습니까? 이 방이 마음에 드십니까?”

손님이 마뜩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하고 말고 할 것도 없군요. 이건 방이라고 할 수가 없군요. 아무튼 간신히 들어갈 수는 있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부호는 앤티크 가구를 비롯해 현대적 양식의 가구까지 수집해 그 방을 채워 두었다. 그의 방에 대한 개념은 그런 것이었다. 부호가 다시 말했다.

“부족한 게 없지 않습니까? TV도 있고 전화, 라디오 전축도 있습니다. 없는 게 없잖습니까? 혹시 부족한 게 있으면 곧 바로 주문해 채워드리겠습니다.”

손님이 다시 말했다.

“내 말을 이해 못하시는 군요. 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가구 명세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방이란 사면의 벽 안에 있는 빈 공간이지 않습니까?”

 

# 3. 한 신인 여배우가 우는 장면에서 극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실제로 울고 말았다. 연기라는 사실을 잊고 정말로 울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역을 자기의 삶인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칠 줄 모르는 눈물 때문에 중간에 무대서 물러나야만 했다. 이를 지켜본 유럽의 전설적 배우 사라 베르나르(1844∼1923)가 그를 불러 말했다.

“당신이 실제로 울 때 관객은 울지 않는다. 연기를 할 때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결코 자신을 그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관객은 완벽한 연기를 요구하지만, 막상 실제처럼 완벽히 하면 오히려 감동을 못 받는 법이다. 우리들이 삶의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막상 완벽한 삶이 이루어지면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우는 장면서 실제로 울면, 연기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관객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는 것처럼 혼신의 힘으로 연기할 때 찬사를 보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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