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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기인이 사라지는 세상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말이 있다.

‘백발 삼천 척’이라는 말도 있다.

둘 다 비유지만 그 의미는 좀 다르다. 석 자인 1m 정도의 수염은 실제일 수 있지만, 삼천 자의 수염은 있을 수 없는 '구라(거짓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비유들은 삶에 맛과 여유와 즐거움을 준다.

 

기인/奇人이란 성격이나 말 행동 따위가 보통 사람과 달리 유별난 사람이다.

그런데 이 기인들의 언행은 사람들에게는 많은 즐거움을 준다. 보통 사람들이 사회적 제약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는 야성(野性/자연 또는 본능 그대로의 성질)을 거침없이 드러내 대리만족(카타르시스)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인이나 초인을 좋아하고 또 그 출현을 기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인간은 오로지 언어의 틀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의 제약을 벗어나면 생각도 멈춘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 낸 언어 세계만을 이해한다.’고 했던 니체 같은 철학자다.

1844년 생, 25세 언어학교수, 27세 예술철학의 고전이 된 <비극의 탄생>저술, 4년 여 만에 교수직을 내동댕이치고, 평생 독신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떠돌았으며, 철학의 쇠망치라 할 책 20여 권을 내고, 56세에 정신병/식물인간 상태로 사망했지만, 사후 보통사람들의 가슴에 통쾌함(?)을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진 기인이기는 하지만 홍길동, 장길산 등 많이 있다. 지금도 호쾌한 입담(구라)으로 많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한 사람도 있다. 입소문으로 떠도는 ‘조선 3대 구라’라는 ‘백기완/황석영/방동규’다. 백기완과 황석영은 유명인이고 지식인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소위 주먹세계 출신(?)이라는 방동규의 구라는 여간 흥미롭지가 않다.

 

“의리가 사람의 근본이 되어야지 세상이 좋은 건데, 요새는 자본이 근본이고 재산이 근본 아닙니까? 자본이 어떻게 주의(主義)가 되지요? 의리고 뭐고 없고 이기는 놈이 장땡이고, 이기려다 보니 모략하고 배신하게 되지요. 그 결과 잘 된 놈은 잘된 놈끼리 모이고, 안된 놈은 사그라지는 것 아닙니까?”

라는 식의 신랄한 비평적 구라(?)를 펴, 시인 고은의 <만인보>에도 오르기도 했다.

“되지 못한 세상에서는/꼭 엉뚱하기는/천장에 매달린/대들보 같은 사람이 있어야 했다/힘깨나 쓰지만 힘자랑보다/입심 좋아/그 입심이 술자리 눈과 귀 집중하다가/술자리 입들 짝 벌어져/와/와 웃음 터진다,”

 

그런데 요즘은 기인이 나타나지를 않아(줄어서) 재미없는 세상이 되었다. 1980년대 대처리즘(Thatcherism)과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에 이은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세계인이 온통 시장 종업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공리주의와 자본주의의 기승에 주눅이 든 사람들이 잔챙이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수입에만 골몰하여 야성/망상/이상을 감히 펼 생각도 못하는 좀팽이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본주가 임금노동자의 일탈을 기를 쓰고 막고도 있지 않은가.

 

이에 서글픈 마음으로 아래 일화를 떠올려 본다.

거지 아들이면서 힘이 장사인 소년이 있었다. 그는 왕을 태운 코끼리가 지나갈 때면 재미삼아 그 꼬리를 잡곤 했다. 그러면 코끼리가 앞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이런 일은 왕에게 아주 난처한 일이었다. 꼼짝 못 하고 있는 코끼리 등에 타고 있는 왕을 보고 백성들이 웃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은 재상을 불러 말했다.

“무슨 조치를 해야겠다. 이것은 나에 대한 모욕이다. 그는 힘이 너무 세다. 그러니 그의 힘을 소모하게 할 방법을 찾아보라.”

재상이 말했다.

“그 아이는 거지입니다. 그는 할 일이 없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을 사람들 앞에서 힘자랑하며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이 음식을 대 주어 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먹고 자고 행복해합니다. 그러니 저희로서는 그의 힘을 어떻게 소모하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일은 현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해 봐야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재상이 현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묘책을 하나 말해 주었다.

“한 가지 묘수가 있소. 그 소년에게 조그마한 일을 시키는 것이오. 그 대신 일이 끝나면 반드시 매일 금화 한 닢을 주시오. 시킬 일은 황혼이 질 무렵 매일 마을의 사원에 가서 램프에 불을 붙이는 아주 작은 일이오.”

“그것이 정말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는 더욱 힘이 세지지 않겠습니까? 금화 한 닢으로 더 좋은 음식을 더 많이 먹을 게 아닙니까? 더욱이 그는 구걸하느라 힘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씀드린 대로만 하십시오.”

일은 즉시 행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왕의 행차가 마을을 지나갈 때였다. 소년은 전처럼 코끼리의 꼬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냥 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사원의 램프를 켜는 일을 맡고부터 근심이 생겼다. 그는 언제나 기억해야 했다. 24시간 내내, 저녁에 사원의 램프에 불을 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했다. 그 강박은 그의 의식을 분리시키는 근심이 되었다. 꿈을 꿀 때조차 그 강박에 시달렸다. ‘지금 뭘 하고 있느냐? 불을 밝히지 않으면 금화 한 닢이 날아간다.’ 물론 그는 받은 금화를 모으고 있었했다. 이미 일곱 개를 모았고, 이제 여덟, 아홉…… 머지않아 백 개가 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수입이 들어오면서 삶의 재미가 사라졌다. 해야 하는 일은 오직 작은 일, 불을 밝히는 일이었다. 단 몇 순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근심이 되었고 힘 또한 모두 고갈시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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