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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神 8 / 불쌍한 신

 

인격신이 존재한다면 그처럼 불쌍한 존재도 없을 것 같다. 70억의 사람이 70억 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읍소하고 애걸을 해 대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가, 민족, 지역, 사람마다 호칭을 달리하면서 기쁘면 기쁘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놀라운 일을 보면 놀랍다는 등 시시콜콜 토를 달아대니 말이다.

 

이리 야단법석을 떨면서도 염치는 있는지(?), 아니면 반성이라도 하려는지(?), 아래와 같은 의미심장(?)한 일화(개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역시 인간은 지혜로운 동물인가 보다. ‘병 주고 약 주는’격이긴 하지만.

왜 신은 인간에게 욕망 주머니를 달아 주고선(?) 이런 고통을 자초하는 것일까?

 

# 1. 성자와 죄인이 죽어서 함께 저승 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지기가 죄인은 문 안으로 들여보내면서 성인은 내 쫓는 것이었다. 성자는 의아했다. 그는 항상 죽은 후 저승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실의에 빠진 성자가 저승 문지기에게 물었다.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저는 항상 밤이나 낮이나 신의 이름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심지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왜……”

지옥 문지기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그대는 신을 너무 괴롭혔다. 신이 마치 해결사라도 되는 양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이것은 하지 말아 달라, 저것은 하지 말아 달라.’하면서 말이다. 살았을 때도 그랬는데 이곳에 오면 오죽하겠느냐? 도대체 그대는 단 한 순간도 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러나 아까 그 죄인은 그렇지 않았다. 신을 괴롭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신을 부른 적도 없고 신과 관계된 어떤 문제도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환영받는 것이다.”

 

# 2. 세상을 창조하고 난 하느님은 한동안 쉬면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보면서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금방 지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무더기로 몰려와 기원(祈願)과 기도(祈禱)를 해 댔기 때문이다. 자식이 없다는 기도, 자식이 많다는 기도, 사랑에 빠졌는데 부모가 반대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기도 등 온갖 사람이 온갖 문제를 가지고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하느님은 한 분 뿐이었다. 따라서 낮에 그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한밤중까지 찾아와 괴롭히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하느님이 측근의 조언자를 불러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 사람들이 결국에 가서는 나를 죽이고 말 것 같다. 도대체 나를 쉬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허구한 날 오만가지 문제를 가지고 와서 나를 괴롭히니 말이다. 나는 인간에게만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었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린다. ‘왜 우리가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당신이 우리를 창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라면서 말이다.”

그러자 조언자가 하느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도저히 찾아 올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오, 그런 곳이 있었는가? 그게 어딘가?”

“바로 인간의 내면(內面)입니다. 그러면 인간들은 당신을 찾아 온 세상을 뒤지고 다니겠지만 절대로 찾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거기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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