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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꾀병 한담- 2

 

# 1. 조지 버나드 쇼가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전화했다.

“지금 나는 매우 아프네. 심장이 멎을 것 같네. 어서 와 주게.”

의사는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는 층계를 두세 개씩 건너뛰며 올라갔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미칠 듯이 달려온 의사는 방안 들어와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의자에 쓰러졌다. 그러자 조지 버나드 쇼가 침대서 뛰어나와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아무 말 마십시오. 너무 급히 뛰어와서 심장에 마비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습니다.”

기겁한 조지 버나드 쇼는 차를 가져오고, 아스피린을 찾느라 온 방을 뛰어다니며 할 수 있는 응급조치를 다 했다. 한 시간쯤 뒤, 겨우 정신을 차린 의사가 말했다.

“그럼, 이제 가 봐야겠습니다. 치료비를 주시지요.”

버나드 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인가? 기가 막히는군. 오히려 자네가 나에게 치료비를 줘야 하네. 나는 거의 한 시간이나 자네를 위해 뛰어다녔네. 그런데도 자네는 아직도 내 병세에 대해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잖은가?”

그러자 의사가 말했다.

“당신은 의사의 치료법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게 저의 독특한 치료 방법입니다. 자, 보십시오. 당신은 지금 건강한 사람처럼 저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멀쩡한 사람보다 더 건강한 모습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치료비를 제게 주셔야지요.”

 

# 2. 한 사내가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어서 의사와 간호사의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퇴원시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치료를 서둘렀다. 마침내 치료가 끝나고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 그러자 사내가 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사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 사람 이젠 뭘 가지고 불평을 하던가? 이젠 불평 거리가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러자 간호사로부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그는 이렇게 불평하고 있습니다. ‘약을 하나도 먹지 않았는데 어떻게 병이 나았느냐’고요.”

 

이런 일화들을 접할 때면 꾀병의 역할이나 심리기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꾀병이란. 자존감이나 주체의식이 낮은 사람, 또는 자신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自律)이 부족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인정을 받기 위해 부리는 술책의 하나다. 즉 그것을 통해 어떤 이익을 얻거나, 인정을 얻기 위한 신호인 셈이다.

 

예를 들면 멀쩡하던 아이가 어린이집 갈 시간이 되면 배가 아프다가도, ‘오늘 안 가도 돼’라는 한마디에 씻은 듯이 낳는 것을 비롯해, 평소 건강하던 재벌이나 권력자들이 구속만 되면 환자복이나 휠체어를 이용해 동정(이익)을 구하는 것들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거짓 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근 골격 계통의 통증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래서인지, 현명한 의사들은 꾀병을 곧잘 이용하기도 한다. 이를 역으로 이용하면 좋은 치료 결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담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신경증(Neurose) 환자가 적절한 관심과 도움을 받게 되면, 그를 계기로 한층 더 안정과 성숙을 기하기도 하고, 또 엄살떠는 약자에게 강자의 따뜻한 배려가 더해지면 조화로운 사회가 만들어지도 한다.

 

한 시인은 정신병원 환자인 처남 병문안을 다녀온 후 쓴 ‘성요한병원’이라는 시에서,

“결국, 사람이란 자기 알아달라는 건데/그렇지 못하니까 미쳐버린 거다/권력도 부부싸움도 그렇다/자기 알아달라는 치정이다/ … /여자만 보면 자기의 자지를 꺼내 보인다는 목수 김 씨 이야기를 하면서도/그는 웃지 않고/나는 웃었다/병원을 나올 때에야/문 앞에 흰 석고 성자가 서 있었다(황지우).”라 읊기도 했다.

 

또 수행의 장애 극복을 위한 경전인 보왕삼매경(寶王三昧經)에서는,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병고(病苦)를 양약(良藥)으로 삼아라.’라는 가르침을 펴지 않았던가.

 

하긴 세간사 이치란 게, 1) 축복은 주어졌을 때보다도, 잃었을 때 그 소중함을 알게 되고, 2) 깨진 종은 탁음을 내지만, 완전히 깨져 파편이 되면 새롭고 맑은소리를 내며*, 3)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한 꽃들을, 내려올 때 보게 되는 법** 아니던가……

◘ Text image/George Bernard Shaw's epitaph: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 1982년 보신각의 깨진 종 대신 새 종을 만든 종장의 말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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