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TV토론장서 문재인후보가 박근혜후보에게 물었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한가요?”
이에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거 아니에요?”라고 동문서답한 박근혜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공약을 저버리고 서민에게 세금을 더 걷으면서도 증세가 아니라고 우겼다.
이런 말 바꾸기나 거짓말*을 접할 때면, 2,500여 년 전 공자의 정명론과, 2,500여 년 후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가 떠오른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군주께서 선생님을 맞아들여 정치하게 된다면 무엇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이에 공자가 답했다.
“꼭 명을 바로 세울 것(正名)이다.”
“이러한 점에서 선생님께서는 현실과 거리가 먼 것이 있습니다. 어찌 바로 세울 수 있습니까?”
“천하고 속되구나.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명(名)이 바르게 서지 않으면 말(言)이 바로 서지 않으며, 말이 서지 않으면 일(事)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禮)와 악(樂)이 일어나지 않고, 예와 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刑罰)이 적중되지 않고, 형벌이 적중되지 않으면 백성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가 명(名)을 세우면 반드시 말이 서고, 말이 서면 반드시 시행된다. 따라서 군자는 말을 세울 때 조금도 구차함이 없어야 한다.”
공자는 사회적 혼란이 명(名)과 실(實)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즉 각각의 위치에 따른 의무와 규범을 제대로 지키지 않음에서 비롯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며, 개개인이 자기 위치에 합당한 덕을 실현할 것을 설파하기도 했다.
반면 2,500여 년 후, 모든 사물을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보려 했던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진위를 가릴 수 없는 허황한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검증 가능한 언어만 사용해야 세상의 편견과 오류를 없앨 수 있고, 세상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개혁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인간은 언어라는 전제를 통해 사고할 수밖에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에 등장하는 ‘그림 이론(picture theory)’이다. 교통사고의 책임을 가리는 재판에서 사용하는 모형 차와 인형이 실제 상황(the facts)과 대응하듯이, 언어 또한 실제 세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은 0도에 언다/하늘은 푸르다’는 명제들은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것이지만, ‘신은 죽었다/고흐보다 고갱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 전자는 참과 거짓이 분명히 가려지지만,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 이처럼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할 때는 인식에 왜곡/오류/오해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나 인간의 정신 같은 검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물론 이런 ‘검증 가능성의 원리’가 만능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신/윤리/예술/신 등 신비롭고 검증 불가능한 영역도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주장은 거짓말장이, 전쟁광, 종교적 광신자들에게는 철학적/이성적 각성제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이런 정명론과 검증 가능성의 원리에 정치인의 말을 대입해 보면 그들의 말이 얼마나 심한 거짓말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시의 이라크 침공 ‘신수설’은 검증이 전혀 불가능한 말이기 때문이다. 또 실현 가능한 조처 없는 공허한 ‘통일 대박론’이나, 세월호 침몰 원인의 호도/은폐성 진단인 ‘적폐론’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는 그 사회의 가치/이념/목표 등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검증 가능한 언어만을 사용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서 일어나는 갖가지 이권 다툼의 조정도 정치의 중요한 몫이라고 볼 때, 정치인의 언어야말로 ‘정명론’과 ‘검증 가능성의 원리’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독을 키운다(윌리엄 블레이크)’는 200여 년 전의 경구를 생각해서라도……
* <국가의 배신/부제:실미도에서 세월호까지 국민을 속인 국가의 거짓말>/도현신/인물과지성사/2015.
◘ Text image/Rene Magritte(1898~1967/벨기에/초현실주의 화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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