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사방탁자엔 <서로 사랑하라>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휘호가 든 백자 항아리가 있다.
그런데 서재 책꽂이엔 <사랑하지 말자>/김용옥/통나무/2012>는 책도 있다.
전자를 볼 때는 그 구절을 마치 정언명령(定言命令/칸트)이라도 되는 양 귀히 여기기도 한다.
후자를 볼 때도 사랑의 본성을 되새겨 보곤 한다. ‘사랑하지 말자’를 반어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 지상주의 때문에 울고 웃는 일들을 접할 때면 여전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김용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사랑과는 결이 좀 다른 논리를 폈다. 그는 <사랑하지 말자>서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케미스트리(chemistry)다’라고 전제하면서, ‘사랑은 양성의 코이투스(coitus) 과정에 개입되는 감정 비슷한 것으로, 이성에 대한 꼴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꼴림은 신경 말단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의 작용으로 생기는 것이다’라고.
그리고 우리말에서는 사랑을,
1) ‘괸다/생각한다/사모한다/보고싶다/그리워한다’는 의미로 써 왔다,
2) 그래서 보고 싶은데 못 만나 걸린 병을 상애병(相愛病)이라 하지 않고 상사병(相思病)이라고 하고,
3) 한자의 애愛는, ‘아끼다/절약하다/귀히 여기다/보호하다’는 의미인데 반해,
4) 서양의 love는, 플라톤의 에로스, 기독교의 아가페와 필리아 그리고 영어의 'to make love'와 같은 표현처럼
남녀 간의 성행위를 포함해 모든 형이상/하학적 의미를 포괄하는 외연이 넓은 의미라고 한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감정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1) 삶 모든 것을 '사랑'으로 휘덮어 버림으로써 말의 개념과 감정의 구조를 왜곡하고,
2) 그로 인해 생긴 사랑에 대한 잘못 된 환상이,
3) 불신, 불화, 반목, 갈등, 고민, 대립, 증오, 질시, 시기, 방황, 혼란, 좌절, 절망 환멸, 저주, 이별, 자살, 살인 등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도 유사한 사례는 많다.
1) 사랑해서 만났다는 짝들이 40%쯤은 갈라서고, 40%쯤은 대안을 없어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나머지 20%쯤만이 그럭저럭 지내고,
2) 기독교인들은 모든 사람이 사랑의 신, 유일신의 피조물이라고 하면서도,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편을 가르고, 한쪽(자본주의)이 다른 쪽(공산주의)을 죽이는 것을 선이라고 하며,
3) 이교도 개종을 위해 아프간으로 선교 투어를 가서 탈레반의 인질이 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국민혈세 600여억 원을 날린 일을 인류애 구현의 일환이라고 하는 일들이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조용필/창밖의 여자)?’
보편적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건가?
왜곡된 사랑 때문에 인류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던가?
차라리 이런 사랑은 하지 않는 게 낮지 않을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래서일까? 위 책에서는 차라리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 감성구조인 인의예지(仁義禮智)로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한다.
1) 상대방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惻隱之心/仁),
2) 불의에 수치를 느끼는 정의로운 마음(羞惡之心/義),
3) 매사에 양보할 줄 아는 마음(辭讓之心/禮),
4)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마음(是非之心/智)’이다.
여기서 이런 일화를 하나 떠올려 본다.
어느 왕이 한 여인을 몹시 사랑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바로 왕의 노예였다. 왕은 여인이 자기에게 관심을 둬 주지 않고 비천한 노예를 사랑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왕은 노예를 당장에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왕은 그녀가 마음을 돌릴 때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정성을 쏟았다.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왕은 몹시 화가 났다. 그렇지만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가 사랑하는 노예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녀가 상처 입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왕은 갈등에 빠졌다. 어찌할 것인가? 왕은 현인을 찾아 자문을 구했다. 그러자 현인이 말했다.
“왕께서는 그동안 잘 못 했습니다. 왕께서는 온갖 방법으로 그들을 떼어 놓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들은 떼어 놓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을 함께 있도록 하십시오. 그들이 서로 떨어질 수 없도록 항상 함께 있게 하십시오.”
“항상 같이 있게 하라고?”
“그들을 함께 묶어 놓고 24시간 내내 사랑하도록 밀어붙이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떨어질 수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떨어질 것입니다.”
왕은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들을 발가벗겨 기둥에 묶고 함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어떻게 묶여 있는 상태로 오래갈 수 있겠는가? 수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서로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몸이 서로 더러워졌다. 소변도 보고 대변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겠는가? 며칠은 참을 수 있었으나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윽고 그들은 서로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한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서로 눈을 감아 버렸다. 한 달여가 지난 후 그들은 풀려났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궁궐에서 나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이후 다시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되었다.
Text image/에로스와 프시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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