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란 ‘심신 활동이 최고조인 성인기 이후, 쇠퇴하기 시작한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다.
그래서인지,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심보선).”라는 시가 나오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도 노년에는
"1) 인생을 수용하고 자아정체성을 유지·통제하면서 살아가는 통합형 노인보다,
2) 변화와 불안을 방어하고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방어형,
3) 가족이나 친족에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수동·의존형,
4) 감정적 일 처리와 인지적 결함을 가진 미성숙형(Neugarten/미국 심리학자)" 노인이 많다.
반면 노년은 일의 해방에서 오는 자유, 휴식, 여유, 유머, 그리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 지혜, 직관이 풍성한 축복기이기도 하다. 이런 축복은 고은의 시구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처럼, 노년에 주어지기도 한다. 관조와 체관(諦觀)을 통해 체념(諦念/운명·순리에 따르기로 마음먹음)의 경지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사람들이다.
소설가 박경리(1926∼2008)는 운명하기 몇 달 전 이렇게 말했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소포클레스(Sophocles/고대 그리스 비극시인)는 사람들로부터, ‘노년에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런 말을 했다. “무슨 끔찍한 말을! 잔인하고 사나운 주인에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나는 이제 막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왔는데!”라고. 그는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진 노년을 축복으로 여긴 것이다.
우리 시대 진정한 철학자였던 박이문(1930∼2017)은 이런 멋진 말을 남기기도 했다.
“노년은 탄생의 혼돈, 유년기의 혼란, 소년기의 격동, 청년기의 욕망, 장년기의 허망함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 준다. 노년기는 체념을 요구하는 시기다. 체념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슬기로운 체념도 있다. 체념은 지나간 날 가졌던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방은 세계와 인생을 관조적·객관적으로 조용히 바라보고 그 의미를 생각하고 평가할 수 있는 지혜를 마련해 준다. 또 이런 지혜를 통해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에 있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과거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거기서 나름대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노동·욕망·무지로부터 해방된 노년기는 인생의 황혼이 아니라 여명이 될 수도 있다. 이 시기를 꼭 황혼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그 황혼은 인생의 어두운 징조를 나타내는 시간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편안하고 지혜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기가 될 수 있다.
늙음은 인생의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며,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일 수 있다. 그것이 시간상으로 끝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황혼이 아니라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여명이 될 수 있다. 늙음이 인생의 잠정적 휴식이고 자유이고 명상이며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면, 늙음의 어느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죽음은, 인생의 영원한 휴가이며 절대 자유이고 무한히 깊은 명상이며 절대적으로 새로운 존재로의 탄생이다.”
이들보다 좀 아래 세대인 이윤기(1947∼2010)는, 생전에 땀과 자유가 범벅된 글을 치열하게 써왔으면서도 이런 겸손(?)을 떨기도 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올 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고백하거니와 나는 아직 난망이다.”
물론 노년보다 청춘이 더 아름답고 활기차다. 그러나 마음의 속성이, 푸시킨이 읊조렸듯이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있고/현재는 괴로우며(건너 뛰며)/지나간 것을 그리워하면서" 지금/여기에 있지를 못하는 것이다 보니 이런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청춘기에 있지 않고, 청춘에 대한 추억에 있다." 라는 회한, 자조, 역설이 뒤범벅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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