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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17. 시험지옥에 숨겨진 비밀(?)

아주 괴롭고 참담한 환경이나 상황을 흔히들 '지옥’이라고 한다.

삶에는 그런 상황이 많다. ‘시험지옥’도 그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이 초등학생 때부터 직업생활이 끝날 때까지 평가의 대상(시험의 포로)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평가에 대한 강박/불안/공/고통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평가/시험이 없어질 가망은 전혀 없어 보인다. 평가없이는 사회가 굴러갈 수 없는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평가와 시험은 자본주의의 순항에도 큰 몫을 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본주의란 “이윤을 내기 위해 조직된 경제로, 1)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2) 노동자를 고용하여 3)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4) 그것을 판매하여 이윤을 배분하고 5) 잉여를 재투자하여 더 많은 이윤을 취하는 것이다.(장하준)물론 이 과정에는 경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기도(애덤 스미스/국부론/1776)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는 치명적 약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익부 빈익빈 그리고 노동자의 불만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주인(자본가)는 노예를, 영주는 농노를 순종하도록 하는 갖가지 논리와 방법을 강구해 왔다.

예를 들면‘소부재근 대부재천(小富在勤 大富在天)’,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는 것이 있는데, 이는 가난을 ‘개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기 위한 논리다.

90년대 한 종교에서 전개했던 ‘내 탓이오(Mea culpa/라틴어)’ 운동도 일정 부분 위 논리와 맥이 닿아있다.

 

그런데 한 경제학자(뉴욕대학교 버텔 울먼)가, '학교 교육 과정에 시험을 끼워 넣어 학생들을 일찍부터 자본주의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든다'는 논리를 폈다. 즉, 교육이란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나아가 바람직한 인성/체력을 갖도록 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 시험이 끼워 넣어 이런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1) 시험 때 엄격한 시간/규칙/형식을 철저히 지키게 함으로써, 장차 사회에서 겪게 될 엄격한 노동규율에도 순응하는 사람을 만든다.

2) 시험 때 평소보다 빨리 생각하고 빨리 쓰는 일의 반복을 통해, 장차 직장의 속도전에 적합한 정신적/정서적/도덕적 준비를 하게 한다.

3) 힘든 시험 준비과정을 통해 자제력을 기르게 함으로써, 장차 직장서 겪게 될 권태, 갈등, 무례, 인신공격 등도 참고 견딜 수 있게 한다.

4) ‘이에 대해 논하라’, ‘저것을 요약하라’는 식의 일방적 명령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미래 고용주의 명령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만든다.

4)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다양한 답을 A/B/C/D/E라는 틀에 끼워 넣음으로써, 몰개성적 직종의 범주들에도 익숙해지게 만든다.

5) 우월한 지식을 가진 교사에게 모든 것을 배움으로써, 위에 있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게 한다.

6) 학생이 잘되기를 바라는 교사(대부분) 밑에서 배움으로써, 사회의 계층구조에서도 늘 그럴 것이라고 잘 못 가정하게 한다.

7) 낙제점이라는 ‘다모클레스의 칼’이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 익숙케 함으로써, 신속하고 가차 없는 처벌에 대해 두려움을 몸 깊이 배게 한다.

8) 모르는 것 투성이인 시험지 앞의 불안감과 자괴감을 체험함으로써, 기존 제도에 대한 비판적 지식을 가질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하고, 더 낳은 제도 도입에 따른 신체적 불편까지도 느끼게 한다.(마르크스와 함께 A 학점을/버텔 올먼/모멘토/2012/230∼232쪽)

시험에 이런 비밀(?)이 숨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기왕 시험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그 비밀이라도 알면 덜 억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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