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시에 으리으리한 집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 집은 어찌나 유명했던지 구경꾼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 집에 불이 나고 말았다. 마침 집주인은 출타 중이어서 다른 사람이 그에게 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지금 당신의 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 말을 듣고 즉시 달려가 현장을 본 주인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이 눈앞에서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막내아들이 달려와 말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제 그 집을 팔았습니다. 어떤 부자가 그 집을 팔라고 하도 졸라대서 그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못지않은 다른 집도 계약했습니다.”
순간 눈물이 멎고 웃음이 나왔다. 집이 불타든 말든 이제 더는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서 막내아들이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 우리가 그 집을 팔기로 했지만, 거래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 부자가 우리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부자가 불을 질렀다는 의혹도 일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집이 다시 자신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그는 커다란 불행에 빠진 것이다.
그때, 집을 산 사람이 마차를 타고 나타나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소.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오. 내가 그 집을 사기로 했다면 이미 그 집은 산 것이오. 계약금을 걸지는 않았지만 일단 계약을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오. 이제 내 집이 불탄 것이오."
그러자 갑자기 눈물 대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 소유/所有란 ‘일시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것’일지 모른다.
사용치 않거나 잊혀져 집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는 물건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설사 내 것이라는 것도 죽으면 모두 남의 것이 될 터이니 말이다.
또 소유물을 협의적·공시적으로 볼 때는 ‘내 것’일 수 있지만, 광의적·통시적으로 볼 때는 ‘잠시 빌려 쓰는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소유물이란 잠시 도둑질한 것(프루동)이다’라고 하지 않든가.
인간의 마음은, ‘아무리 좋은 것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는 건 잠시뿐, 다시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 이처럼 마음의 속성은 ‘추구와 갈증’이다.
그렇다면 소유물을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추구에 따르는 갈증은 해소 되지 않을까?
세상은 바야흐로 ‘소유에서 접속의 시대(제러미 리프킨)’로 바뀌고 있다지 않은가.
◘ Text image/프랑스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 프루동
※ 斷想: 때에 따라 떠오르는 단편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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