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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성공법칙 유감/遺憾

 

프랑스 약리학자 에밀 쿠에는 1901년,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다가 우연히 ‘위약효과(僞藥效果/placebo effect)’를 알게 되었다. 이후 암시에 대한 꾸준한 연구로 ‘상상과 언어를 통한 치료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1922년 <의식적 자기암시를 통한 자기제어>라는 책을 출간했다. 요지는,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Day by day, in Every way, I am getting better and better)."고 꾸준히 매일 자기암시를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기적 같은 이론이다.

 

1923년 쿠에의 자기암시 이론이 미국에 소개된 후, 유사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잘 알려진 것으로, 나폴레온 힐의 <성공의 법칙*>,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 로버트 슐러의 <불가능은 없다>, 단 카스터의 <정신력의 기적>, 조셉 머피의 <잠재의식의 힘>등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힐을 제외한 네 명의 저자 모두가 목사라는 점이다. 물론 이들은 책 덕분에 많은 신도를 모으기도 했다.

 

- 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1) 잠들기 전에 소리 내서 암송하고, 2)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믿어질 때까지 반복하고, 3) 주변 곳곳에 써 붙여놓고 꾸준히 마음에 심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고,

- 필 목사는,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 꿈꾼 대로 된다, 생각대로 된다, 뜻한 대로 된다.”고 역설했고,

- 슐러 목사는 “계속해서 머릿속에 긍정적인 의식을 주입하면 생각이 변해 성공할 수 있다”고 했고,

- 카스터 목사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는 신약성경 구절을 끌어들여 주목을 받았다. 즉, 1) 자신이 원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으면(잠재의식에 심으면), 2) 그것이 초의식(우주에 차 있는 대 생명력인 신)에 전달되어. 3) 초의식(신)의 도움으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고 했고,

- 머피 목사는, “원하는 것을 잠재의식에 심으면, 잠재의식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향으로 의식을 조종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서도 이런 유의 설교로 교세를 늘린 예가 있다. 80년 대 여의도의 모 순복음교회는 “할 수 있다 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막 9:23).”는 글귀를 걸어 놓고, 성공을 부추기는 설교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C 목사의 설교 테이프를 들어보면, 금방이라도 성공과 부를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랬으니 승자독식 자본주의에 지친 신도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은혜(?)가 되었겠는가.

 

그래서인지, 예배가 끝나면, 그 은혜(?)에 감복한 신도들이 사전에 약정한 헌금통장을 들고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었다. 그런데 정작 성공법칙을 부르짖은 C 목사는 수 백 억 원대의 횡령사건/비리 등으로 고소 고발 사건에 휘말렸는데, 그는 최후 진술에서 ‘어떤 판결에도 따르겠다.’했었다고 한다.

 

나도 한때는 이런 유의 성공법칙에 빠져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수년 간 잠자리서,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구절을 암송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철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삶의 모드를, 1) 선입견 없이 현상과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방향으로, 2) 근본적 문제를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풀어 보려는 방향으로, 3) 모든 사유를 열린 마음으로 투명하게 해보려는 방향으로 바꾸면서, 그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개개인의 자유나 안전은 대체로 돈이 보장해 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성공과 부를 추구한다. 그러나 정작 부를 이룬 사람은 많지 않다. 부로 들어가는 문이 구조적으로 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꿈을 접을 수 없으니 너도나도 성공법칙에 매달린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그런 법칙들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실패한 사람은 믿음 부족 때문이라며 자책하기도 한다.

 

이런 성공법칙들은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일시적인 위안을 주긴 한다. 그러나 희망이란,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스피노자)’이기도 하고, 또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기쁨’아니던가.

 

그런데도 자칭 타칭의 행복전도사(?)들은 여전히 성공법칙을 앞세워 소시민들의 가슴에 헛바람을 불어넣기에 여념이 없다. 한때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민성공시대를 열겠다며,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카피를 차용해 국민들 가슴에 헛바람을 넣는데 동조하기도 했다. 정작 사회구조적 문제 개선엔 눈도 돌리지 않으면서.

 

이제는 성공법칙도 인간 본연에 충실한 ‘자기다운 삶’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감정을 적대시하는 이성(칸트)에 앞서, 감정을 긍정하는 이성(스피노자)에 충실한 삶, 그리고 선악(Good & Evil)이라는 거창한 이분법보다 좋음과 나쁨(Good & Bad)에 반응하는 내면감정의 소리에 충실한 삶으로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니체가 말했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열거한 것이 진정한 자기’라는 것이나, 스피노자가 말했던 ‘자신이 욕망하는 것에 대한 감정이 진정한 자기 모습’이라고 한 것들에 눈을 돌려 봐야 하지 않을까. 이젠,

1) 각종 의식산업에 의해 씌워진 굴레를 벗어던지고, 2)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감정의 소리에 따라, 3)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4) 인간 본연에 충실한 삶이고 또 진정한 성공적 삶이라는 점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 1928년 나온 힐의 <성공의 법칙>은 전 8권이었다. 그러나 분량이 너무 많아 1937년 보급판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3권을 내놓았다. 이를 번역한 것이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임

◘ Text image/에밀 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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