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공간 속에 있어야 한다. 공간이 존재의 필수조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신론자들은 신이나 천국은 시공간 밖에 있는 비물질적/비지각적 존재라고 우기기도 하고, 또 영(靈)적인 것이라고도 한다. 1) 대상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고 2) 생각할 수도 없고 3) 근거도 없고 5) 진위 검증도 안 되는 6) 시공을 초월한 ‘그 무엇’일 뿐인데도 말이다.
예로부터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영생을 염원해 왔다. 그래서 머리 꾀나 쓰는 사람들은,
1) 우주를 관장하는 인격신이나 내세가 시공을 초월해 존재한다고 상정(想定)한 다음,
2) 그것에 ‘신/천국’이라는 이름도 붙이고,
3) 또‘전지/전능/전선’이라는 개념도 부여한 다음,
4) 그런 개념에는 완전성과 존재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덧붙인 다음,
5) 신과 천국이 실재(實在)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수많은 신학자나 철학자들의 억견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이론과 억기 논리가 줄을 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1.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는 스위스의 법학자이자 철학자인 카를 힐티의,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신의 본질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은 신이 아니며, 신을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억견,
# 2. ‘서양에서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지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탈리아의 신학자/주교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삼단논법인,
“인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신은 무한하다(대전제) / 유한한 것은 결코 무한한 것을 밝혀낼 수 없다(소전제) / 따라서 유한한 인간은 결코 무한한 신을 밝혀낼 수 없다(결론).”이라는 억견,
# 3. ‘중세의 대표적 철학자요 스콜라 철학의 창시자’라는 안셀무스의 삼단논법인,
“하느님은 완전하다(대전제) / 완전성은 존재성을 포함한다(소전제) / 그러므로 하느님은 존재한다(결론).”는 억견,
# 4.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로부터 ‘우상 파괴적인 예언자이자, 사람들을 진실로 되돌린 영웅이며, 인간이 지닌 용기의 진정한 표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마르틴 루터의,
“이성은 신앙의 가장 큰 적이다. 그것은 영적인 것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것을 경멸함으로써 신의 말씀에 맞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성으로부터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인은 마음속에서 이성을 파괴해야 한다.”는 억견 등이다.
# 5. 그래서였던가? 영국의 법률가·정치가·문장가·철학자였다는 베이컨도 한마디 거들었다.
“바로 말해서 신은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네. 신은 철학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지. 철학의 대상은 인간과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뜻이야. 알지도 못하고 보이지도 않은 것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없는 돈으로 집을 사겠다는 생각과 다를 바 없다네.”
이를 듣고 있던 사람이 베이컨에게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신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닐세. 나는 신을 믿고 숭배하네. 하지만 지식으로 신을 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네. 사실 신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전무 상태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신을 지식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나는 다만 신을 숭배하고 찬미할 뿐, 결코 신을 철학의 연구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이론을 전개하겠다는 것은 허공에 뜬 채로 잠을 자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네. 알아듣겠는가?”
# 6. 이런 억견 퍼레이드에 종지부를 찍기나 하듯, 초기 그리스도교의 신학자요 논쟁가요 도덕주의자로 불리던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신)은 엉터리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하나같이 억지고 편견이고 억견**이고 독단이다. 한결같이 형용모순이다. 또 막무가내고 억지춘양이고 무대뽀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그래서 이를 접할 때마다. 아래 사자성어들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自家撞着, 語不成說, 言語道斷, 橫說竪說, 牽强附會, 刻舟求劍, 甘言利說, 誇大妄想, 曲學阿世, 矯角殺牛, 巧言令色, 權謀術數, 奇想天外, 多岐亡羊, 東問西答, 目不忍見, 美辭麗句, 識字憂患, 龜背刮毛, 猫頭縣鈴, 畵中之餠, 以卵投石, 臨機應變, 指鹿爲馬, 坐井觀天, 表裏不同, 矯枉過正, 群盲撫象, 曖昧模糊, 流言蜚語, 惑世誣民, 下石上臺, 針小棒大, 痴人說夢 ……
또 '사물의 진위 선악을 구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을 부정' 하는 대목이나,
철학이란 궁극적 존재의 근원을 밝히고 그에 따른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인데, '신은 그 철학의 바깥에 있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게 과연 제 정신서 나온 논리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어보기도 한다.
애재라. 이런 억견 퍼레이드에 얼마나 신물이 났으면(?) 버트란트 러셀이 죽어서 신으로부터 “왜 신을 믿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신이시여, 증거가 불충분했습니다. 증거가요!”라고 대답하겠다고 했겠는 가……
* Credo quia absurdum is a Latin phrase that means "I believe because it is absurd."
** 臆見: 근거가 없이 짐작이나 상상으로 하는 생각
◘ Text image/테르툴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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