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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역설의 변증 - 5

 

1976. 7. 28. 새벽 3시 28분, 인구 70만의 중국 탕산 시 일원에 규모 7.8 지진이 23초간 일어났다. 갑작스런 새벽 지진으로 일거에 27만 여 시민이 사망했다(실제 사망자는 80만 명이었는데 문화혁명 후반기여서 이를 축소 발표했다는 설도 있음).

이 참상을 현지서 목격한 일본 대사는 귀국 후 이런 글을 남겼다.

 

“땅이 흔들리고 건물은 계속 허물어졌다. 화재는 연옥같이 건물을 태워 나갔다. ……그런 속에서 중국인들은 질서정연하게 행동하고, 난동을 부리거나 남을 해치는 일이 없었다. 진동/붕괴/화재가 계속되는 가운데 불행을 당한 이웃을 위해 달려 나가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마치 자기 가족을 위하듯이 행동했다. ……누구나 공동체 속에서 자기희생으로 남을 위하고 전체를 위해 행동했다. 우리나라의 도시에서 이런 대지진이 일어날 경우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면서,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과 감동에 말없이 숙연하게 서 있었다.”

 

1977. 7. 13. 밤 8시 30분부터 14일 밤 10시 35분까지 인구 1,000만의 미국 뉴욕에 정전이 일어났다. 그 시간 동안 뉴욕 시는 ‘지옥’이 되었다. 남이 자기 얼굴을 알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 시민들이 일제히 밖으로 뛰쳐나와 약탈, 파괴, 방화, 강간, 난동,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한 기자의 지적처럼 ‘천만의 시민이 천만가지 행동’을 했다.

 

당시 뉴욕시민과 탕산시민의 물질적 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기독교가 없던 탕산시민은 십계명대로 행동한 반면, 기독교 사회임을 자랑하는 뉴욕시민은 십계명을 완벽하게 배반했다. 부자나라 시민은 남의 것을 빼앗은 반면, 세계서 가장 가난한(?) 나라 시민은 자기를 버리고 이웃을 도왔다.

 

1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두 참사를 대비(對比/<자유인>/리영희/범우사/1990/218~20쪽)) 한 걸 보면,

1) 세간사 이치가 다분히 역설적이라는 사실,

2) 금지(십계명 만들고)야말로 초대장(십계명 배반)이라는 사실,

3) 사물/현상의 실상/본질은 상황이 나쁠 때 더 잘 드러난다(칼 융)는 사실,

4) 재난/재앙에 임하는 자세/태도에 두 부류가 있다는 사실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면, 일본 관동대지진 때(1923), 사심 없는 이타심으로 피해자(한국인/중국인/시민)를 도운 다수의 시민이 있었던 반면, 괴 소문을 조작하고 악용해 책임전가/살인 등 2차적 피해를 키운 소수의 일본 보수/우파세력이 있었던 사실이다.

 

이를 잘 말해주는 담론이 1) 레베카 솔닛이 <이 폐허를 응시하라/정해영 역/팬타그램/2012>에서 편 ‘재난 유토피아론’이고, 2)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김소희 역/살림Biz/2008>에서 편 ‘재난 자본주의론’이다.

 

레베카 솔닛은 이 책에서 재난/재앙의 긍정적 순기능(?)을 이야기 했다. 즉 재난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긍정적 모습을 본 것이다.

1) 재난 시 대다수 사람은 겁먹고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

2) 대부분의 사람은 재난 시 사심없이 이타심을 발휘한다는 것,

3) 그 와중에 ‘일시적이나마 기쁨/낙원/유토피아’를 맛본다는 것,

4)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미국 정부의 실패한 대응이 잘 말해주듯, 권력의 속성 상 정부 대응은 아무리 잘 해도 본전에 못미친다. 따라서 그런 일을 겪은 국민은 정치적으로는 더 성숙해 지고 사회변혁에도 더 적극적이게 된다는 것 등이다.

 

반면 나오미 클라인은 이 책에서 자본주의 체제서의 재난/재앙의 부정적 역기능을 이야기 했다. 재난이라는 쇼크를 이용해 배를 불린 자본가의 부정적 모습을 본 것이다.

재난이라는 쇼크의 와중에,

1) 이를 악용해 일부 자본가가 이윤과 착취를 도모한다는 사실,

2) 세계은행이나 IMF가 재난을 이용해 지배력을 확대/강화한다는 사실,

3) 국제금융재벌은 양털 깎기*로 남의 재산을 베껴먹는다는 사실 등이다.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네 삶의 궁극 목표는 평안과 행복(Well-Being)이다.

즉 나쁜 것 없이 좋은 것만 있는 삶이다.

그런데 좋은 것이란 나쁜 것이 있음으로써 그 존재 가치가 인정되는 상대적 개념 아니던가.

1) 별이 더욱 빛나기 위해선 밤이 더 깊어야하고(夜深星逾輝),

2) 부싯돌에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선 서로 부딪치게 해야 하고(볼테르),

3)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그만큼의 큰 의문을 품어야 하고(大疑卽有大悟),

4) 나뭇가지를 하늘까지 뻗게 하기 위해선 뿌리 또한 땅속 끝까지 뻗게 해야 한다(니체)는 것처럼……

 

* 양털깎기: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 발행권을 가진 미국 ‘연준’을 주식회사 형태로 장악한 국제금융재벌이, 금리를 내리고 올리는 방법으로 남의 재산을 빼앗는 일(화폐전쟁/쑹훙빙/차혜정 역/랜덤하우스코리아/2008/166~168쪽)

◘ Text image/영화 <大地震>/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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