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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음식과 평화

 

'경복궁 뜰을 나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으로 생긴 공기의 떨림도 지구 반대편에 이르면 폭풍이 될 수 있다.'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1972) 예화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사건이라도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고, 수많은 경우의 수가 겹치면 큰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논리다.

우리네 삶도 수많은 것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작용/반작용, 순기능/역기능을 거듭하면서 숱한 ‘경우(관계)의 수’를 만들어 낸다. 지금 세계를 괴롭히는 코로나19도 그 중 하나다.

 

예를 들면 32마리 말이 64칸의 말판에서 승부를 겨루는 서양장기는 10의 120승에 달하는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수십억의 사람이 수백만 가지의 상품을 유통시키는 시장에서의 '경우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서양장기의 수는 시장의 경우의 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鳥足之血) 만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수많은 경우의 수 중 예측 가능한 상수와 그렇지 못한 변수를 알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그래야만 삶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고 평안도 더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학문이라는 것도 모두 이런 것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요네하라 마리의 <식품견문록/마음산책/2009>을 보면,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가질 수 있다.

그녀가 제시한 음식 관련 경우의 수엔 이런 것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에게 신맛 나는 흑빵은 그들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또 고향/조국/위胃/혼魂으로 이어진 밧줄이고 동아줄이고 영적 끈이다. 이런 러시아군이 1736년 터키와 전쟁 중, 보급열차 사고로 5만 4천명이 신맛 나는 흑빵을 못 먹고 흰빵을 먹게 되자, 거의 궤멸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간과한(?) 교황 레오 9세가 ‘성찬식에 신맛 나는 빵을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던지자, 러시아인들은 로마가톨릭교회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엥겔계수가 높고 음식 맛도 좋은 나라다. 그래서 군인들마저도 풀코스 음식이 안 나오면 도무지 총을 들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일본군은 조식粗食으로 수련해 온 사무라이 정신을 이어받아 강군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일본군의 식사를 본토 보급식 아닌 현지식으로 바꾸자, 전투로 죽은 군인보다 굶어죽은 군인이 더 많았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영국이나 미국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도 맛없고 변변찮은 전투식량(C-Rations)을 잘 참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영/미의 음식 맛이 좀 더 좋았더라면 세계가 한결 더 평화로졌을 거라는 가설도 성립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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