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1. 6. 한겨레신문 ‘전문블로그(사측 방침에 의해 지난 3월 폐쇄)’에 실었던 글을 다시 올려 본다. 지금 추진 중인 남북평화체제 구축정책을 ‘북의 위장평화 공세’라며, 폄하/반대/훼방(?)하는 야당의 행태를 5년 전과 비교해 보고, 나아가 문재인과 김정은의 밀땅 대화를 미루어 짐작해 보기 위해서다.
인간은 이기심을 자제하지 못하는 한 불만을 벗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이 불만이 빈부차와 상대적 빈곤감에서 오기도 하기 때문에 국가 불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위정자는 이 불만을 억제/해소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불안과 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다행히(?)도 이에 안성맞춤(?)인 북한이라는 ‘절대악(?)과 높은 수출의존도’라는 소재가 있다. 그래서 사악하고 무능한 위정자들은 이를 이용해 불안과 위기를 곧잘 조성한다. 2013. 12. 23. 노동자의 불만 표출의 하나인 철도노조파업에 대해 대통령이, “지금 언제 도발할지 모르는 북한과 철도노조 파업 문제,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정치권의 갈등 등으로 국민이 여러 가지로 걱정스러울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평소 악마 관리(?)를 꾸준히 해 오면서다.
한반도에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남북한이 있다. 우리는 북한을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 할 목적으로 조직된 반국가단체(국가보안법 2조 ➀항)’로 규정하고 있고, 휴전 상태인 채로 군사적 대치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유엔 회원국 가입을 찬성하기도 했다. 따라서 남북 간에 갈등(대립/충돌)은 상존한다. 그래서인가? 물실호기이듯, 저질 정치인들이 이를 정치에 이용해 재미를 톡톡히 봐 왔다. ‘NLL 포기 운운’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지식인으로 관찰자 입장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을 파헤쳤다”는, 유시민의 책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을 관찰자의 입장서 읽어 봤다.
그 결과, 1) 노무현의 NLL 포기 발언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2) 김정일이 노무현이 합리적 제안에 동의하는 것을 보고 그가 악마적 호전 광만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3) 헌법에 네 번* 씩이나 나오는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무현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김정일을 설득한 워딩(말씨/표현법/어법)에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전체 회담록의 맥락을 보면 김정일은 노무현의 파트너로는 여러모로 달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문적 소양이나 지식, 진실성, 언어구사 능력, 국제정세의 통찰력, 국가 비전과 소신 등 어느 것 하나 노무현에 미치지 못한 듯했기 때문이다. 하긴 자력갱생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노무현에 비해, 김정일은 폐쇄적 체제 안에서 지도자로 길러진 독재자였긴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정치관이나 세계관은 상당히 편향적이고 경직되어 있었다. 즉흥적인 면도 많았고, 발언의 주술 관계도 엉망이고, 제대로 끝을 맺는말도 드물었다(회담 내용이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마음 편히 말한 것일 수 있겠지만).
특히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남쪽 사람들이 자주성이 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자꾸 비위 맞추고 다니는 데가 너무 많다.”는 김정일의 비판에, 노무현이 우리의 ‘자주론’으로 반박·설득하는 것이었다. 노무현은 긴 시간 마치 강의하듯 김정일을 설득했다. 물론 그 내용은 웬만한 지식인이면 다 아는 것이었다. 즉 “북의 절대적 자주는 국익에도 반하고 국제적 고립만 불러온다, 그러나 우리는 강대국의 눈치를 잘 살피고 적절히 이용해서, 안보와 경제적 실리를 취해가면서 점진적으로 자주성을 회복해 가고 있다. 그리하여 2012년에 전시작전통제권도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먹고 사는 문제와 현실의 제약 때문에 ‘친미’하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여러모로 이익이라는 등”이었다. 아래 발언들이 좋은 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모든 일을 자기 소신대로만 하는 ‘절대적 자주’ 개념은 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전적으로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비위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유가 사대주의 정신보다는 먹고사는 현실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다는 점을 잘 이해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남측은 평화가 흔들린다고 하면 주가가 땅에 떨어집니다. 해외에서 빌려오는 돈의 이자가 올라갑니다. 위원장하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6·15 때 악수 한 번 했는데 그게 우리 남쪽 경제에 수조 원, 수 십 조원 번거거든요. 어제 사진도, 어제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조 원 벌었습니다.”
자주란 북이 가장 중히 여기는 이념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김정일은 노무현의 우리 식 자주에 대한 ‘강의’를 제지하지 않고 끝까지 경청했다. 그리고는, “옳습니다. 노 대통령님의 견해를 충분히 알았습니다.”라며 동의했다. 이를 계기로 막혔던 회담이 풀리고, 안 하려 했던 오후 회담도 열렸고, <10·4 공동선언>에 담을 내용도 쉽게 합의됐다.
회담 성과는 묻히고, 회담록을 불법으로 열람(?)한 자들이‘NLL을 포기했다’고 날조해 선거에 이용한 의혹은 있는데, ‘이제는 그만 덮고 가자’는 말만 나오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친구들 술좌석에서 위 독후감 일부를 풀어 봤다.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1)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 2) 국정원서 공개한 대화록 자체가 노무현이 고쳐 쓴 건데 그런 걸 바보같이 믿느냐, 3) 그런 ‘싸가지 없는 놈(유시민**)’이 쓴 책도 믿느냐 등이었다. 이들은 어느 면에서는, ‘진실과 맞닥뜨릴 때, 견지해 왔던 지론이 무너지는 두려움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싶다.
우리는 흔히 “진실은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상대적 가치를 지닌다. 즉 삶에 플러스적 요인이 될 때만 가치 있다”는 식의 실용주의(pragmatism)적 논리를 펴기도 한다. 물론 일리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위와 같이 엄연한 진실을 왜곡/날조해서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면……
* 헌법전문 / 제4조 / 제66조 ③ / 제69조.
**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는 말을 잘 해서 ‘바른말도 싸가지 없게 한다’는 절묘한 비난(?)을 받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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