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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1. 이즈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한때는 교육 관련 각종 세미나나 강의에서 이런 요지의 말을 자주 했었다.

<인생이란 일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고 나아가 자아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모든 교육은 진로교육(준비/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련 책자인 <진로 탐색 워크북>과 <CD>도 만들어 냈다.

그런데 퇴직 후 철학 관련 책들을 읽고 삶을 다시 성찰하면서 생각이 바뀌게(후회?) 되었다.

특히 자아실현의 순기능만 이야기 하고 역기능을 간과한 점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인생관(人生觀)에 따라 삶의 방향(進路)/방식을 정한다.

인생관의‘관/觀’이 삶을 보는 입장이고 태도이며 또 가치선택의 준거기 때문이다.

어느 인생관이 좋다/나쁘다 할 수는 있는 기준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대개의 사람은 능동적⋅남성적⋅투쟁적 자아실현을 좋은 인생관이라고들 한다.

당위적 진리(예: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되는 것)가 아닌데도 많은 사람이 선호함으로써 '사실적 진리'가 된 이유 때문인 듯하다.

 

대체로 우리의 인생관엔 서양의 형이상학이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면,

1)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 데카르트의 우주관, 뉴턴 이후의 과학적 우주관 등이 있고,

2)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기계주의 자연관과 성공주의 인간관이 있으며,

3)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행복한 돼지 보다 고민하는 인간’을 더 높이 평가하는 철학(소크라테스)이 있고,

4)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지식과 이성으로 자연을 정복하여 욕망을 채우는 것에 둔 파우스트적 철학이 있고,

5) 권력에 대한 의지 추구(니체) 등이다.

 

특히 두 번째의 인생관은 아주 매력적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이고 또 성공위주적 삶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은,

1)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확신(착각?)을 가지고,

2) 주어진 현실과 운명에 저항하고 도전하면서,

3) 끊임없이 지성을 길러 지식을 축적하고,

4) 그 힘으로 자연을 길들이고 정복하여,

5) 더 좋고 더 편리한 것을 더 많이 만들어 냄으로써,

6) 안락한 문명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일찍부터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비롯해 수많은 서양의 위인전 등을 통해 영웅적으로 자아를 실현한 인물에 감동하면서 자란다.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 등 문학작품 속 모험적·영웅적 주인공들에게 감동을 받으면서 커간다. 예를 들면,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불렸던 앙드레 말로가, '큰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생각을 소설화한 <인간의 조건>의 비극적 인간상을 매력적으로 찬양하면서 말이다.

 

이런 의지의 인간상을 찬양하는 풍조는 기성세대의 강고한 카르텔에 의해 확대⋅재생산되어 우리의 가정⋅학교⋅사회를 지배해 왔다. 따라서 아이들이 어쩌다가 성취적 자아실현 아닌 ‘평온⋅평탄⋅평범⋅평화적’인 삶을 꿈꾸기라도 할라치면 맹 질타를 당한다. 하긴 우리는 한때, 국가로부터 일방적⋅강제적으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국민교육헌장)’으로 내몰린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의지적⋅투쟁적⋅대립적⋅성취적⋅파우스트적 인생관은, 고난·파멸·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비장하고 비극적인 삶이 되기 일쑤다. 물론 이런 비장한 삶은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역사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침대서 평온하게 죽은 사람은 역사에서 잊혔지만, 남의 손에 죽은 사람은 역사에서 오래 오래 기억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좀더 시야를 넓혀 보면 세상에는 수동적⋅여성적⋅동양적 자아실현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적 인생관이 있음도 알 수 있다. 1) 인간을 우주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2) 자신의 존재와 기능도 우주적 처지에서 생각하며,

3)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삼지도 않으면서

4) 우주⋅자연⋅운명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는 평화적 인생관이다.

 

물론 이런 인생관의 바탕에는 오래된 동양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1) 모든 개체나 자아를 우주와 분리될 수 없는 전체로 본 힌두사상이 있고,

2) 인간의 특수성을 부정하고, 이성과 합리성을 앞세운 갖가지 인위와 당위를 비웃은 노장사상이 있고,

3) 지식과 이성으로 무장하여 끝없이 욕망을 채우려는 집착이 모든 고뇌의 원인임을 지적한 붓다의 가르침(四聖諦) 등이 있다.

 

이런 동양적⋅평화적 인생관은 따뜻한 구들장의 평안을 안겨주긴 했다. 그러나 근대 서구 문명을 따라잡지 못해 빛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반면 서양적⋅비극적 인생관은 근대의 눈부신 과학발전을 이룩해 안락한(?) 삶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자연의 파괴와 공해로 지구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간의 균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열을 촉진해 소외를 키워가고 있다.

 

사람들 마음엔 1) 제국을 얻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정복 전쟁에 몰두한 알렉산더 같은 비극적 인생관과,

2) 자족과 무치(無恥)의 행복을 주창하면서 반문화적 자유로움을 실천한 디오게네스 같은 평화적 인생관이 동시에 들어 있다. 물론 둘 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둘 다 가질 수도 없다. 그러니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어느 것이 '좋다/나쁘다'는 기준이나 근거도 없지만.

 

◘ Text imag/남성현(필자) 작 <妙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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