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인식론/관념론은 철학의 알파요 오메가다.
우주/자연/존재에 대한 인식의 양/질이 삶의 양/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에서는 “어째서 애당초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하이데거)?”라는 식의 의문들을 꾸준히 제기 해 왔다.
물론 이에 대한 이론도 많다. 그러나 모두가 어렵고 장황하고 난삽하다. 그래서 어설프게나마 나름대로 간략히 생각 해 봤다.
무엇인가 존재 한다는 것은 => 존재가 의식에 의해 인정된 것이고 => (인정된 것은) 의식에 의해 경험된 것이고 => (경험 된 것은) 언어로 재해석/의미화 된 것(관념)이다 => 이렇게 언어로 의미화 되었을 때 인식 되었다고 한다. => 따라서 인식된 것은 실재 존재의 재현이 아니라 관념이다 => 물론 이 관념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모든 관념은 많은 해석 중 하나다’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이후 20세기 초까지 서양의 이성중심주의(logocentrism) 철학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 이전의 존재(무엇인지 알 수 없는)는 이성과 직관으로 얼마든지 실재 그대로 재현 할 수 있다고 생각 해 온 것이다. 예를 들면 선/악도 금덩이를 찾듯이 찾아 낼 수 있는 존재라 생각했고,
또 언어로 얼마든지 재현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즉 A라는 존재의 실상을 B라는 언어로 서술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도,
1) 이미 언어로 재해석/재구성/번역/의미화 된 개념이고 관념일 뿐인데,
2) 언어를 존재 자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해 온 것이다. 하긴 지금도 <언어=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이처럼 세상의 모든 관념은 절대적일 수 없기 없다. 따라서 모든 관념은 전체적/근본적/반성적 사고를 통해 끊임없이 리모델링해 가지 않으면 내일의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