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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법가 VS 유가

문제의 해법은 문제(대상/사물)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엄격한 법 적용과 처벌이 필수라는 우파의 해법과, 소통과 참여를 내놓은 좌파의 해법이 그 좋은 예다. 물론 전자는 사회에 경직과 공포를, 후자는 개인의 잠재력과 사회 활력을 불러온다. 

중국은 주(周)나라가 무너진 뒤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른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BC770~221)라는 초유의 혼란이다. 물론 도전에 응전이 따르듯 해법도 많이 나왔다. 바로 제자백가의 수많은 해법(쟁명)들이다. 대표적인 것만도 추연의 음양가, 공자/맹자/순자의 유가, 묵자의 묵가, 상앙/한비의 법가, 공손령의 명가, 노자/장자의 도가, 손자의 병가, 소진/장의의 종횡가의 해법들이다. 이 중 유가(儒家)와 법가(法家)의 인식/해법 차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좋은 시사점을 준다.

유가( 공자)는 당시의 혼란을 이렇게 봤다.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논어 자로편)’라는 것이다. 이는 ‘어진 사람(군자)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지만, 어리석은 사람(소인)은 지배하려고 하고 공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혼란의 원인이 '힘에 의한 패권적 흡수합병이라는 국가경영'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그 해법으로 윽박지름/폭력이 아닌,  ‘옳고 그름을 따져서 사람을 두루 사랑하는 인(仁)과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위치와 주제를 잘 파악해서 행동하는 예(禮)’를 내놓았다.

반면 법가(상앙/한비자)의 해법은 ‘엄벌과 처벌만이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진(仁) 사람은 남을 배려를 할 수는 있지만 어질게는 못한다. 상의 효과도 거의 없다.  반면 벌은 즉시 효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벌과 상은 9:1의 비율(刑九賞一)로 하되, 상은 백성들이 서로 감시를 잘 할 때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상앙(?~BC338/법가의 창시자)의 뒤를 이은 한비(韓非/BC208?~233)는 진나라 통치철학을 만들어 법가의 정점을 찍기도 했다. 그가 만든 진나라 통치철학은 1) 엄격한 규율의 법法, 2) 왕의 절대 권력인 세勢, 3) 통치 기법인 술術 이었다.  한비는  ‘이것만 잘 갖춰지면 왕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법가의 말로는 처참했다. 1) 상앙은 그의 군주가 죽자마자 사지가 찢겨 죽었고, 2) 한비는 재상 이사의 모함으로 진시황의 사약을 받고 옥사했으며, 3)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14년 만에 멸망했다. 그 원인을 오늘의 어법으로 말하면  ‘국민을 한데 묶고 철권으로 개발독재를 추진하는 후진국 형 강권 지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저 백성이란 한 숨 돌리고 먹고 살만하다 싶으면,  기존의 억압에 반항하고 ‘인간다운 삶과 자유’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이를 두려워한 진나라는 시중에 유통되는 물자를 교묘히 줄여 삶을 빡빡하게 만듦으로써 반항정신을 누그려뜨리려고 했다.

이러한 강권/법치/ 패권의 법가는 몰락한 반면, 인과 예의 유학은 한나라의 관학(官學)이 되었고 오늘까지도 공자는 영생을 누리고 있다.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도 법가의 논리라 할 박정희 식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꾀 많다.

학창시절 무서운 담임선생님을 맞게 되면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기대감을 가졌던 것처럼 말이다. 또 목표를 향해 가다가 중간에 어슬렁거리게 되면, 외부의 강력한 누군가가 통제해 주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였던가? 사르트르는 ‘자유롭도록 처형’된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에 따르는 불안과 책임을 모면키 위해 자유로부터 도피하려 한다지 않았던가.

강자의 힘은 다수의 약자 지배에서 나온다. 반면 약자의 힘은 다수에 있다. 물론 그 다수는 공동선이고 지혜이다. 그리고  다수는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따라서 약자인 다수에게 책임이 있는 사안들은 처벌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을 처벌하는 법은 민주주의의 법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논어에는 '和而不同 而不和'를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고 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로 풀이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보아  '를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로, 을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  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한다.(신영복의 담론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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